연락드릴께요 기다려주세요

정중한 거절,

학원 선생님은 이력서를 가지고 간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주소가 적힌 작은 종이쪽지를

저에게 전해주셨지요.

"시간되는대로 찾아가 봐요.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갈색 뿔테 안경너머

선생님의 다정한 눈빛이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건네준

메모지를 보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처음 본 주소가 메모지에 적혀있었지요.

"공릉동..."


2025년과 같이

교통지도나 네비게이션이 있다면

지하철이 구석구석 설치되었다면

핸드폰이나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당시 지하철 1호선만이 있었던 때.

기껏해야 종로나 서대문 근방만 알고 있었던

나는 공릉동이란 낯선 지역을 찾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도전이었습니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목발을 짚은 나를 받아줄 것인가?"


Photo by L.S.J.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나는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서

그곳에 찾아가기로 결심했지요.

"어차피 낯선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보다 더 낯설고 힘든 곳도

찾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때부터 나에게

"도전과 모험

(Challenge and Adventure)"

숙명처럼 습관이 되었습니다.


공릉동을 찾아간 그 날은

조금 덥게 느껴진 날이었습니다.


버스를 타는 것도 만만치않은데

낯선 곳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그 버스가 내가 가고자하는 그곳으로

제대로 데려다 줄 것인지

제가 올바르게 버스를 탔는지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속옷을 적셔가면서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고 내려서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면서 다녔습니다.


오랫동안 목발을 짚고 가다보면

먼저 목발을 짚은 팔뚝으로 진통이 전해지고

다음에는 어깨가 고통이 가해져서

다리를 들어올리기 힘들 수 없을 정도로

무릎에 무거운 체중이 가해져서

힘겨워지기 시작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목발을 짚은 겨드랑이가

아프지않을까하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아주 초창기에 겪을 뿐이고

그 기간을 넘어서면 겨드랑이는

목발을 짚고 가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게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주소에 적힌 건물을 찾았습니다.

약두시간 반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그곳은 반지하(半地下)에 있는

전자제품 조립하는

조그마한 공장이 있었습니다.


만스무살인 나를 만난 사람은

스물다섯 정도된 젊은 남자였습니다.

그는 의자에 걸터앉아

목발을 짚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았습니다.


Photo by L.S.J.


잠시후

내 이력서를 살펴보더니

"학원을 다녔군요. 알겠습니다.

집에 가서 기다리시면 연락드릴게요."


이렇게 말하는 그분의 얼굴에는

정중함과 진정성이 있어보였습니다.


나는 가던 길을 다시 더듬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김칫국을 먼저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그곳에서 연락이 올까?

연락이 오면 어떻게 다녀야할까?

집에서 다니라고 허락할까?"


독자 여러분!

저에게 연락이 왔을까요?

어떠했을까요?


하하하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려도 기-- 다려도

님 오지않고 ..."


그랬습니다.

아직도 오지않는 그 소식을

조심스럽게 기다려봅니다.


정준한 거절이었지만

아직도 거절이 되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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