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받으러 가다

어머니 등에 업혀서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

교회를 다녔지요.

어머니는 저를 등에 업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양육방식이었어요.


국민학교 2학년때

목발을 구입한 후

내발로 교회를 다니기까지

나는 어머니 껌딱지 였습니다.


아주 흐릿한 기억이었지만

만5세정도 되었을 때로 추측됩니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기도원으로 가셨습니다.

"소아마비"

어머니는 의술(醫術)로 해결하는 것은

일찌기 포기하셨지요.

이제 남은 방법 한가지는

어머니가 절대적으로 믿는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의술이 빈약했던 사회를 사는. 서민들에게

당시 변계단 현신애 권사님들의 명성이

아주 자자했습니다.

이분들은

소위 "신유은사(神癒恩賜)"

매우 유명했습니다.


"이젠 기도 뿐이다.

기도받아 우리 막내 다리 고쳐야지"

어머니의 믿음은 아주 굳건했습니다.


경포가시연습지 photo by R.G.Y.


나를 데리고 간 기도원은

아마도 세검정(洗劍停) 근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날씨는 무더웠지요.

기도원에 참석한 분들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어머니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은 하얀색의 한복을 입었지요.

이분들이 부르는 찬송가는

구슬프고 박자는 잘 맞지않았지만

절규에 가까울정도로

한이 맺혀있었습니다.


드디어 현신애 권사님의

안수기도(按手祈禱)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도처에 가득 앉아있는 분들 사이로

직접 다니시면서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섯살 밖에 안된 어린 나는

어머니 무릎 위에서 가녀린 두손을

꼭 모아서 어머니 얼굴을 쳐다보며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뭐라고 기도했을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시간

어머니는 막내아들인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어요.

"하나님!!!

내 다리가 고쳐지지 않아도

엄마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도와주세요."


잠시후 현신애 권사님의 기도하는 손이

어린 나의 머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결과 어찌되었을까요?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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