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잊어버리다

흑암의 공포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지만

나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나의 두다리에는 힘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아마비는 그대로 있지만

어머니의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고

국민학교 2학년 즘

"성경암송대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위대한 착각에서 시작되었지요.


"소아마비로 다리에 힘이 없는 자는

손재주나 암기능력이 뛰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전제는 편견에 근거했지요.


시편1편 1절~6절


1.복이 있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의 꾀를 따라가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하지 않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밤낮으로 깊이 생각하는 자로다.

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계절에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이 시들지 않는 것처럼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4.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그저 바람에 날려 가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은 의인의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리라.

6.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보호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라.


경포가시연습지 photo by R.G.Y.


결코 길지않은 단 여섯문장으로

이루어진 성경구절이었지요.


내용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

나는 단순히 연속된 낱말들을

외워가기 시작했지요.

반복적으로.

무려 3주동안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외워보세요.

사실 약30분이면 충분히 외울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는

외우기에 쉽지않은 정도의 길이었지요.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습니다.

저녁7시 예배.

사회자의

"성경암송대회를 시작합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내심장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호흡도 거칠어지고

손발은 조금씩 저려왔습니다.

어린 나의 순서는 앞에 정해졌습니다.


드디어 내순서가 되자

목발을 짚고 비틀거리며

나는 단상 위로 나아갔습니다

단상은 나의 신장에 비해

매우 높았습니다.


그때 어떤 어른(아마 집사님이셨겠지요)이

높은 의자를 가지고 와서

저를 그 위에 냉큼 들어 앉혔습니다.


저녁예배시 교회의 모든 등(燈)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무대에 서게된 나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暗黑)만이

자욱했을 뿐이었습니다.


나의 입술에서 "복 있는 사람은..."

시편1편 구절이 마이크를 통해

또박또박 예배당 전체로

울려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도

숨을 멈춘 상태에서 암송(暗頌)하였지요.


예배당 안은 내 목소리에 집중하느라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순간 이 넓은 공간에

"나 혼자" 있다는 생각에 빠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순간.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그 다음 구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머리는 백지상태가 되었고

눈앞은 아주 캄캄해졌습니다.

숨도 멎었습니다.


"어떻게 하지?

도대체 그 다음 구절이 뭐야?"

답답해 미친지경이었습니다.

두다리만 건강하다면

빨리 의자에서 뛰어내려

집으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어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저 바람에 날려 가는 겨와 같도다."

막내 누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어요.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나는 "처음부터 다시 암송하겠습니다."하고

다시 "복있는 사람은..."하며

암송하기 시작했어요.


다행스럽게도 힘겹게

끝까지 암송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단상에서 내려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몇등을 했는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단 하나

우뢰(雨雷)와 같은 박수소리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는 사실 밖에는.


어린 나.

이날의 추억으로 인해

"암기(暗記)하는 일은 내적성이 아니야!"

나는 다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며칠 뒤

많은 어른들이 나를 볼 때마다

"잘 했어. 참 잘했어!!"라고 칭찬하실 때마다

내 안에 작은 자신감이

쌓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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