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학교 교사
그나마 구로공단으로
출근하는 일도 중단했습니다.
여전히 무엇을 해야할 지를
정한 것은 없었습니다.
아니 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알고보면 그다지
낯설지도 생소한 표현도 아닙니다.
당시 장애인들의 진로가 막혀있고
가야할 곳도, 받아주는 곳도
찾기 힘들었지요.
다만 그들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는 사실일 뿐이지요.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대표로 성경고사 대회도 출전하고
우수상(優秀償)도 받은터라
적어도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는
자그마한 자긍심이 있었지요.
또한 백수 장애인인 내가
교회학교 교사가 되는 일에
그다지 커다란 부정적인 기류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학생들.
이들도 목발을 짚고 성경을 가르치는
나를 스스럼없이 받아주었습니다.
나를 환대(歡對)하는 어린 친구들을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일은
사실 21살의 젊은이가
게다가 성경을 제대로 연구조차 하지않던
내가 성경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야말로 어설픈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겠지요.
그래도 매주일 부족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성경에 대해서
특히 예수님, 교회, 하나님의 뜻에 대해
진지하게 나누는 시간들은
삶의 의미를 깨닫게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더욱더 중요한 사실은
나를 환한 모습으로 받아주는
어린친구들의 밝은 모습이었지요.
그들에게는 목발도, 백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순간 착각했지요.
주일학교 교사.
나에게
가르치는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유지할 수 있음도
자신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런 작은 자신감이
오늘의 나를 만드는 씨앗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