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에서의 짧은 출발
학원을 수료하고
취업은 실패했습니다.
결국 면접으로 끝난 첫번째 도전.
이 때 형님친구가 사장으로 계신
회사(전자제품 제조 공장)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찬밥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었지요.
나는 무조건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무모한 도전의식이
언제부터 내 안에서 싹이트고 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여튼 버스를 두번타고
구로공단 안에 있는 공장을 향한
나의 출근길의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출근길. 게다가 구로공단으로 가는
시내버스에는 언제나 승객으로
가득했습니다.
안내양의 목숨건 사투와
마치 이 버스가 아니면
영원히 출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집요한 신념하에 많은 노동자들은
필사적으로 출근투쟁을 이어갔습니다.
당연히 나도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종로로 나아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여정이 구로공단으로
다가가는 길이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인가?
지옥으로 가는 길인가?"
시루떡 항아리와 같은 버스 안에서
나보다 어려보이는 그리고
왜소해보이는 여성들까지
한데 엉켜서 출퇴근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길이었지요.
간신히 출근하면
소위 공돌이라 일컫는 친구들
(그들 중 나도 한 자리 차지하지만)
그들 속에서 나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TV전자학원에서 배운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선에 옷을 입히고
프레스(press)로 찍어서 전선을 고정시키고
색깔별로 전선을 분류하고
일정한 수량대로 묶는 일
이런 일들을 매일 반복했습니다.
결코 체력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지만
기계처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두뇌를 사용해야 하는 나에게
더욱 힘든 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머리를 사용하면서
요령과 방법을 찾아가면서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나은
실적과 성과를 보여주기 시작했지요.
사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은
중학교 졸업이나 중퇴자로
시골에서 올라온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시간 떼우기, 잠시 쉬는 시간에 담배 피우기,
퇴근하면 적은 돈으로 포장마차 가기
주로 이런 식으로 젊음을 소비하며
꿈도 없이 마지못해 일을 하곤했지요.
실제로 회사에서도
이 어린 친구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 꿈, 비전 등을
제시하기 보다는 적은 임금으로
주어진 물량을 불량(不良)없이
처리해내는 그이상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콩나물시루같은 버스를 이용해서
매일 출근하는 일은
결국 나에게 신체적으로 무리(無利)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당황하면서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백수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