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으로 기차타고 슝슝
TV 전자학원을 다니면서
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본래 내성적인 내가
새로운 만남을 갖고
교제에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학원을 다니면서.
전자 TV에 대해서
새로운 용어도 익히고
구조에 대해서도 배우는 등
상업과는 전혀 다른 낯선 분야와 친해질 수 있도록 뇌 구조를 바꿔야 했습니다.
게다가 목발을 짚고
오고 가는 모든 과정들은.
새롭게 익혀야 할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때 아침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의 주변은 평택에서 쌀 가게를 하고
이 친구는 매일 서울로 오고 가면서
전자 TV에 대한 새로운 기술을
익히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용복
이름은 매우 낯익었습니다.
당시 12줄 기타를 가지고
인기가요를 부른
시각장애 가수 그분의 이름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가선 것이 아니라
그는 나에게 자기 집이 있는
평택으로 가지않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고민할 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용복이와 함께
서울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평택으로 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기차여행.
기분이 어떠했을까요?
서영춘씨의 랩으로 부르는 노래가
이십대 초반이 된 나의 입술에서
흥겹게 흘러나왔습니다.
기차에서 삶은 계란도 사 먹고
간이역에 내려서 방금 뜨거운 육수에서
건져낸 우동을 맛보고
다시 기차에 올라타 여행을 하는
기차여행.
약1시간동안의 짧은 기차여행은
평태서정리 역에서 하차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
어느 누구에게는 십대초반에 경험하는
이런 여행을 이십대가 되어
늦깍기 경험을 하게되는 것.
하지만 나는 속으로
"육십대가 되어도 기차가 무엇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분도 있겠지?"하면서
자위하는 세상에 스며들었습니다.
학원을 다니는 1년간의 생활은
학교, 교회 이외의 공간에서
새롭게 친구를 사귀게 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비장애인들에게는 별것 아닌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겪고. 내성적이며
외부생활을 통제하는 가정에서 자란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특별한 일이 된것입니다.
1976년을 성인으로 맞이하는
적어도 이십대 초반의 나에겐.
이날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車窓)밖에 펼쳐지는 논과
짙푸른 잎으로 하늘 높이 솟은 가로수를
바라보면서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다짐을 뒤로 하고
이십대 초반은 쉽사리 흘러가는 듯
보였습니다.
"기다리세요."
공릉동의 젊은 친구의 공허한 약속이
단지 메아리로 귓전을 맴돌면서
답도 하지 못한 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