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삼박사일동안
농촌에서 어린 친구들과 함께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일은
또다시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예배당 마루바닥에 가득 모여앉은
파리채로 파리들을 쉴새없이 잡던 일,
전도사님 사택에 농촌 젊은이들과 둘러앉아
밤새도록 이야기 꽃을 피우면서
도시보다 억센 모기들과 혈투(血鬪)를 벌였던 일.
당시 TV에 출연했던 요리연구가를
모셔서 지역여성들에게 요리강습을
개최했지요.
그렇지만 단 열 명만 참석했어요.
비록 교회집사님이며 친구 어머니가
강사로 봉사하는데
적은 숫자의 참여로 인해 당황했어요
알고보니 TV요리시간에는
매번 소고기만 등장하는데 그런 요리는
농촌에는 적절하지 않아 배울 것이
없다는 분위기가 강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천지역에서 생산된 재료를
중심으로 요리교실을 개최한다고 하니
그 다음날 무려 칠팔십명이 참석했어요.
그때 강사님의 멘트가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가지 재료로
한가지 음식을 만드는 것은
아마추어이고요
한가지 재료로
여러가지 음식을 만드는 것이
프로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프로요리연구가로
만들겠습니다."
비록 삼일동안이었지만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천지역에서 생산된 쌀은
임금님께 보냈다고 할 정도로
좋은 제품이라고 했는데
사발에 넘치도록 채워진 밥과
반찬은 단하나 김치.
그렇지만 단숨에 뚝딱 먹어치울 정도로
그 때 맛보았던 밥맛은
잊을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단 한시간 거리의 이천.
그런데 교육과 문화생활은
꽤 거리가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각을 처음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면
이 질문에 내놓을 대답이 있어야하는데
나에게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나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
이글을 읽고 계시는 작가님들.
내가 무엇으로 이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부품조립과 납땜에 몰입해야 하는데
과연 이 일을 평생동안 해야 하는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다시 깊은 고민과 더불어
단잠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