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봉사를 나가다

이천 수** 교회로

마침 나에게 숨통이 생겼습니다.

여름방학(사실 나에겐 여름방학이

존재하지 않았지만)을 이용해서

농촌교회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약5일동안.

집에서는 흔쾌히 허락했지요.

사실 가내수공업을 하는 곳은

하루를 쉰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하지요.

하루하루가 바로 돈이고

생존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1년반동안 쉬지않고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일해온 나에게

이런 기회를 허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70년대 후반만 해도

"서울과 지방"이란 도식이 아니라

서울과 농촌 혹은 서울과 시골이라는 도식이

보다 익숙한 표현이겠지요?


이천(利川)행 고속버스를 타고

약 한시간 동안 달렸습니다.

이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마을로 들어갑니다.

마을에서 내려 약20분 정도 걸어서

논둑길을 지나 마을 깊이 들어가니

시골교회가 서 있었지요.

교회 마당 곁에는

전도사님 사택(私宅)이

아담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함께 간 20여명의 청년들이

마을 아동들을 위한

"여름 성경학교"를 개최하기 위해

서둘러서 바쁜게 움직였어요.

두서명은 그 교회를 다니는

이천치역 청년 두서명과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을 모으고 홍보를 하기 위함이지요.


예배당 안에서는

여름성경학교 준비를 마쳤습니다.

드디어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었고

동네아이들이 약 스무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비록 서울에서

삼사백명이 모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였지만.


Photo by R.G.Y

그래도 서울사람보기를 신기해하는

어린 친구들의 눈망울은 똘망똘망했습니다.


그중 한친구는 내옆에 가지런히 놓여진

목발 두개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게 뭐에요?"

"왜 다리를 다쳤어요?"

"진짜 목발 없이는 걷지 못하나요?"


누가 보기에는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 보듯 질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나는 이 어린친구들의 순박한 질문이

너무 좋았습니다.


아마 농사를 짓는 그 마을에서는

목발을 짚고 사는 사람을

처음 본 모양입니다.


나는 우스꽝스러운 예를 들어서

나의 모습을 설명하려 했지요.

"너희들 을지문덕 장군을 아나요?

그분이 참석한 살수대첩이란 것이 있어요.

내가 그 전쟁에 참전했잖아.

그때 적군이 쏜 수천개의 화살을 다 피했는데

딱한개의 화살을 피하지 못해서

내 다리에 꽂혔어요.

그때이후로 나는 걸을 수 없어서

이렇게 목발을 짚게된 거에요."


내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두눈 크게 뜨고 귀를 기울여듣던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아이고 선생님. 무지무지 웃겨요

그럼 선생님 나이가 천살이 넘었겠네요?"


"아하! 이해가 안되지요.

그럼.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을 알고있나요?"


그러자 아이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외칩니다.

"몽골군을 무찌르다 다쳤군요?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아이들이 역사도 잘 알고

눈치도 빨라요.

"어떻게 알았지? 모두 대단해요."


이렇게 시작된 아이들과 만남에는

어색함이 사라지고

친숙함이 가득했습니다 .


"저 선생님 힘드시면

제가 목발을 들어드릴까요?"

"차라리 나를 들고가는 것이

더 쉽지않을까?"


웃으면서 오고가는 대화 속에

순수함과 해학이 담겨있었습니다.


더이상 목발은 호기심 대상이 아니라

친숙함의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여름성경학교는

둘째날이 되어서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참석한. 아이들 숫자가

오십명이 넘어버린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천에서 수원으로

유학을 간 국민학교 중고생들이

모두 참석했기 때문입니다.

"자 서울사람 구경가자!!!!"


그 서울사람들 안에

목발을 짚은 재미있는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이 흥미거리가 되겠지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