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잘 못 찔렀네요!
부적절한 작업환경에서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해서 하는 것은
결국 허리에 무리를 가하는 것입니다.
약2년쯤 지속해서 일을 했지요.
이때 다시 나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지난번 침을 시술했던 침술원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시각장애인 침술사(視覺障碍人 針術師)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하긴 고객이니까 그리하셨겠지요.
"자 엎드려봐요.
오늘은 부황(付黃)을 붙여서
나쁜 피를 뽑으려고 하니까.
참 이 침(針)은 굵고 길어요. 잘 참아요."
엎드린 내가 등 뒤에 놓는 침을
어떻게 볼 수 있단 말인가?
단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의 등을
온전히 내맡길 뿐이지요.
순간 "뿌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굵은 침이 등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이와 동시에 짧은 탄식(嘆息)소리가
나의 귓전을 강하게 울렸습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말게나.
피가 흐르지 않으니까."
그의 손길은 조금 더듬는 것 같더니
다시 "뿌지직~~~"하며 침이
등을 뚫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잘 되었어요.
두세군데 더 침을 놓으면 좋을거에요. "
이후 두세군데 침은
허리를 뚫고 침투했고
그 자리에 불붙은 솜이 담긴
작은 병들이 부착되었습니다.
당시 내가 소아마비 걸린 아이들을
많이 고쳤습니다. 일찍 나를 만났다면..."
이분은 지금 치료하는 허리 디스크 보다
나의 소아마비에 더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부황에 가득 담긴
검게 변색이 된 혈전(血栓)을 꺼내보이시더니
"몇번 더 침을 맞아야 합니다!"라고
말씀을 건네신 침술사는
엎드리고 있는 내다리에 침을 십여개 꽂고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소아마비 발병이 많았지요.
그때 참 바빴어요.
내가 많이 고쳤는데."
나는 서너차례 이분을 만나서
치료를 받고 다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메가폰 부품조립은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안타까워 하셨지요.
드디어 진정한 백수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곰곰히 따져보았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을 하던간에 써먹을 수 있는
가장 필요한 공부를 해야겠다."
나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니는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친구는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한 뒤
"그래도 영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 누가 나를 가르쳐주지도 않고
또 학원도 다닐 수 없고.
어떻게 영어공부를 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중학교 1학년 영어교과서
거기에서 부터 시작하면 제일 좋을텐데.
나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돈도 들이지 않고 영어공부할 수 있는 방법.
그 다음날부터
나의 영어독학(英語獨學)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나의 영어실력의 기초는
중학교 때가 아니라
바로 이 시기부터 이루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