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교회를 도울 수 있다면
나는 친구와 함께 여름성경학교를
도왔던 이천(利川)을 방문하기로 했지요.
친구 둘이서 함께 여행을 하는 것
내 인생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고속버스를 타고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쏜살같이 달려
이천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터미널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교회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구비구비 휘어진 논둑길을 지나는데
지난 여름과는
판이하게 다른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논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추수가 끝나고 벼를 다 벤 후
논은 허허벌판 그 자체였습니다.
게다가 벌판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차디찬 겨울바람은 목발을 짚은
나의 두손가락을 예리한 칼로 베는 듯
날카롭게 파고 들었습니다.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품고
비틀거리며 걸어오다 보니
여름성경학교를 했던 예배당이
아무말없이 조용히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핸드폰도 없었기에
손글씨로 편지를 써서
우리의 방문을 사전에 예고했던 터라
나보다 굵은 손가락을 가진
검게 그슬린 청년이
예배당이 서있는 자그마한 언덕 위에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한 미소를 띈 채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달려왔습니다.
비록 작은 선물이지만
홍옥 사과 한박스를 어깨에
짊어졌던 친구에게서 그 청년은
날쌘돌이처럼
냉큼 사과박스를 뺏어서
자기 어깨에 옮겨놓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구나.
단한번 만났을 뿐인데,"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지난 여름성경학교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훌쩍 태양은 서산으로 넘어가고
둥근 달이 산 위로 쏟았습니다.
낯선 요청에 우리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지요.
겨울밤이 그렇게 짧은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구들장 아래 솔잎과 장작을 넣어
아랫목은 손을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졌고,
여름성경학교 기간 중 함께 했던
교회학교 교사들 서너명이 합세해서
밤새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잠이 들었나봅니다.
아침햇살이 뚫린 창호지 틈새로
비집고 들어와 내얼굴에 닿았습니다.
어느새 아침이 우리를 맞이했어요.
김장김치와 주발 가득히 쌓인 흰쌀밥.
그리고 무우시레기국.
고맙다는 말을 했는지조차 잊고
게눈 감추든 한그릇 뚝딱 헤치우고
능청을 부렸습니다 .
"우리는 캄캄한 아침에 일어나
소여물과 돼지 먹이를 주고
건너왔습니다."
아침 늦게 일어난 게으른 도시아이들에 비해
부지런한 시골청년들의 삶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 같았습니다.
"혹 이선생님은 우리 교회에 와서
도울 수 있을까요? 그러면 참 좋겠는데요."
그는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이곳에 오셔서 돼지도 키우고...
우리가 도와드릴께요.
그리고 교회 일 특히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성경과 공부를 지도하시면
우리에게 큰도움이 될텐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요.
교회 전도사나 목회자도 아니고
그맇다고 한 집의 가장도 아닌 이 친구가
게다가 목발을 짚은 나에게
무슨 자격으로 이런 제안을 할까?
나와 친구는 진지하게 대화를
조금더 이어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고 오면서
친구와 나는 이러저러한 내용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