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독야경(晝讀夜耕)의 시작

삶의 패턴이 바뀌다

지금은 전자랜드이지만

80년대초에는 청과도매시장,

농어촌수산시장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용산역 앞에는 홍등가(紅燈家)도

줄지어 서 있었지요.

우리는 청과물 시장 안에 위치한

2평 남짓한 잡화(雜貨) 중심의 편의점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주침야독(晝寢夜讀)을 패턴으로 살던

나에게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명령이

하달(下達)되었습니다.

낮에는 부모님이, 저녁부터 새벽까지

내가 가게를 담당하라는 것입니다.

주된 고객이 과일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도매상 주인과 이들에게 과일을 공급하는

화주(貨主)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과일들은 새벽3시부터 오전7시까지

상점에 대형트럭으로 운반되어

배달됩니다.


그제서야 도매상 주인들은 가게로 나와

과일을 인수받아

중간도매상과 소수의 소매상에게 판매합니다.

아침8~9시 정도되면 모든 거래는 끝이 납니다.

폭우가 내린 다음날 아침 하늘. Photo by R.G.Y.


이후에는 중간도매상(소위 앞자리라고 하지요)과 일반 소규모 소매상들이

방문하면서 오후가 되기 전

모든 거래는 종료됩니다.

아마 가락동 도매시장에서

이런 방식의 거래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결국 나는 삶의 패턴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주독아경(晝讀夜耕) 형식으로.

이날부터 나에게는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새벽1시부터 4시30분(봄에는 4시)까지가

나에게 주어진 취침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일을 평생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답없는 질문을 혼자 뇌까리면서

부족한 잠을 채우지도 못한 채

나는 밤에 출근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남자가 되어있었습니다.


장사는 그럭저럭 잘 되었습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연로하신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형님은 회사를 그만두고

이 일에 합류를 했지요.

물론 밤근무는 여전히 내 몫이었지만.


약 일년쯤 지나서

나는 작은 결심을 했습니다.

"저 이천으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도움을 받아 돼지도 키우면서

교회를 도우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아버지는 사뭇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목발을 짚고 너혼자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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