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이 무슨 소용있어요?
고3때였지요.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7월중순쯤이었을거에요.
아침부터 비가 심하게 내렸습니다.
가방 안에 있는 책이 젖지않도록
커다란 비닐을 구해서 가방을 둘러쌌지요.
이미 두 손에는
목발과 가방이 자리를 잡았지요.
우산은 어떻게 들지?
신기한 것은 이러한 나를 보면서
식구 중 어느누구도
우산을 씌어줄 생각을
전혀 하지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부자연스럽지만
목발과 가방을 한 손에 몰아넣고
오른 손에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지요.
새벽5시40분.
교실 열쇠를 쥐고 있는 나는
평소보다 2-30분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비는 곱게 내리지 않았습니다.
중력(重力)에 의해 빗줄기가
땅을 향해 내려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공중의 바람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일까요?
앞에서 때로는 옆에서 들이치는
바람으로 인해 빗줄기의 향방을
전혀 가늠할 수 없었어요.
얼마가지 못해
오른손에 들려있는 우산은
제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가방을 제외한 나의 몸뚱이는
목욕탕 안에 깊이 잠긴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우산을 접고 빗속을 뚫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처음에 우산을 들고
빗줄기를 피하려고 작은 수고를 했지만
나의 수고는 쓸모없음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인생을 살아가는데
겪어야할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올 때
피하려는 무모한 노력으로
헛되이 시간과 수고를 하기보다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꺼야
지금 내가 목발을 짚고 살아가야 하는
삶이나 빗줄기에 나를 맡기고
젖은 상태로 걸어가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러저러한 상념(想念)에 빠져 걷다보니
벌써 내 손은 교실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나는 교실 안에서 문을 잠궜습니다.
친구들이 등교하기까지 한시간 정도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속옷까지 말끔하게 벗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강력한 두팔로
옷을 쥐어짜서 가능한 최대로
물기를 빼내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 칠판 앞에 매달린
철사줄에 교복에서 속옷까지
모두 걸었습니다.
"한시간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물기는 빠지겠지."
불도 켜지않은 교실에서
벌거숭이가 된 고3인 남학생인 나는
비닐을 벗긴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책상위에 올려놓고 칠판앞에 널린
빨래 아닌 빨랫감을
넋을 잃고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요?
학교에서 일하는 여학생종업원
(내나이 또래인데 급사라고 불렀지요.)이
교실을 점검하느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벌거숭이 나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잠시후 나는 옷을 하나하나
줏어입기 시작했습니다.
다 차려입자 친구들이 하나둘씩
비에 젖어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이 빗속에서 어떻게 왔니?
죽겠다. 나는 책도 다 젖었어."
"너는 비를 한방울도 안맞은 것 같애
야... 나 이옷을 어떻게 해야하니?"
다들 아우성이었습니다.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은 임박했는데
아직도 교실창밖은 거친 빗줄기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