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

처음 잠옷을 선물받았다

중학교 2 학년 때였다.

비가 억수로 내렸다.

일본 유곽으로 지어진 집

기와로 만들어진 지붕에서

방 한가운으로 빗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기와가 깨졌나 보다.

아버지는

별로 도움도 안 되는 비닐 우산을 들고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성격이 매우 급한 아버지는

비가 새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긴 누군들 참을 수 있으랴.

방 안에서는 세수대야가 아니라

양동이로 받쳐두고 빗물을 받았다.

주르륵주륵 주륵 퐁당퐁당 철렁 철렁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양동이를 빠른 속도로 채워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물에 빠진 생쥐처럼

비에 젖은 아버지는 지붕에서ㅈ내려오셨다.


"어떻게 됐어요?"

"응. 가운데 기왓장이 어긋나서

그래서 비닐 집어넣고 적당히 막았어"

그래서 그런지 빗물이 잦아들었다.


가장(家長)의 무게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빗속을 뚫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위험한 기왓장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지붕을 정리해야 되는 것인가 보다.


오후에 형님이 집에 들어왔다.

그 손에 무엇인가 들려 있었다.

" 너 가져라 잠옷이다,"

"잠옷????"

참으로 생소한 단어이다.

"잠잘 때 입는 옷이 따로 있어?"

소위 파자마 같아보이는

펑퍼짐하게 생긴 옷이었다.


나는 냉큼 그 옷을 줏어 입었다.

" 어때! 괜찮아?"

맞지 패션쇼라도 하듯이

나는 잠옷을 입고 환하게 웃었다

언제 바깥에는 햇빛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 비가 그쳤나 봐?"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 친구 하나와 눈빛을 마주쳤다.

"이리 내려와라. 같이 물 구경하러 가자."

"물 구경이라고 무슨 물구경!"

나는 목발을 짚고 잠옷을 입은 채로

뛰어내려갔다.

"야 며칠 동안 비가 왔잖아

저 아랫동네가 물에 잠겼대

한번 구경으로 가자!"


나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친구를 따라 내려갔다.

아랫동네가 친구 말대로 물에 잠겼다.

물에 잠긴 동네 사이로 어떤 형은

조그만 보트를 타면서 노를 저으며

이동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아유? 저거 어때 어떻게 해

집이 다 잠겼잖아!"

" 아우 저 신발가게

저기 옷 가게 다 젖었겠네."

"아니 저기 정육점은 고기를 다.

어떻게 해

먹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하고"

" 글쎄 말이야.

저 집은 밤새 잠 못 자고

물을 퍼냈는데

결국 저렇게 잠겼다잖아"


철없이 물 구경하러 가는 우리 앞에서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땅을 치며 속상해했다.

그제서야 정신 차렸다.

"응 저기 우리 친구네 신발가겐데

어? 저기 영철이네 옷 가게인데

어떻게 하나?"


바로 그때였다.

내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 야 너 잠옷 입고 어디까지 온 거야?

빨리 집에 들어가 챙피하지도 않아?"

그랬다. 나는 잠옷을 입고 서 있었다.
마치 잠옷을 외출복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물구경 하자는 말에.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챙피해서.


그래서 저러나 친구네 집은

어떻게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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