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기대하고 기다리지만
설교를 시작했다.
교사 신분으로.
지휘자 신분으로.
후임은 언제올까?
한편으로는 늦깎이 입시준비생이 되어
남 모르게 학력고사 준비도 하면서.
그런데 내입술에서 기도는 나오지 않았다.
"대학교 입학하게 해 주세요.
고등부 전도사 되게 해 주세요.
돈 벌어 부자되게 해주세요
두 다리 고쳐주세요."
사실 이런 기도는 낯설었다.
아니 낯 부끄러웠다.
나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런 종교행위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단지 "최선을 다하게 해 주소서."
이뿐이었다.
그러나 나도 인간이다.
미래가 불분명한 젊은이였다.
다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하고
취업을 해서 시집장가를 기획하는 때
나는 아직도 안개가 자욱한 길을
아니 안개가 도무지 걷힐 것 같지않은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또한 똑바로 걷는 것이 아니라
힘없이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때깔만 그럴듯한 대타였다.
"언제쯤일까?"
막연했다.
그해 성탄절을 준비하면서 나의 마음에는
쓸쓸함과 허전함이 가득했다.
"S대 철학과 합격!"
이 소식은 나를 기쁘게 했지만
그 자체가 나의 미래를 밝히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 학비를 위해
중간고사에 심혈을 기울이는 중에도
고등부 설교는 지속되었다.
"왜 후임자를 구하지 않을까?"
사실 기도란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
(anticipate and wait)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조차
어떤 그림도 내 안에 남아있지 않았다
중간고사가 끝날 즈음
담임목사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아! 드디어 대타설교인생이 끝나는구나.
후임자가 결정되었나보다."
나는 후련한 듯 마음을 먹고
목사님을 만나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 들어와. 앉게."
바리톤 어조로 나즈막하게
목사님은 나를 향해 말씀하셨다.
나는 목발을 소파 옆에 세우고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 설교하느라 수고 많았어.
적정한 사례도 없이."
나는 웃으면서 목사님께서 하실
다음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당회(堂會)에서 결정했네.
자네를 고등부 전도사로 정식 임명하기로.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수고해야겠네."
나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말이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수고했네."로 끝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속 수고하게"라는 문장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대학입학을 축하하네.
등록금마련은 어떻게?"
목사님께서는 추가질문을 던지셨다.
그리고는 잠간 내 등 뒤에 걸려있는
시계를 쳐다보시고는 질문을 이어갔다.
"앞으로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