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만 끝나면...
공식적인 기관에서 공부를 하고
중간고사를 치룬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신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나보다 연상(年上)이었다.
나보나 연하(年下)인 친구들은
공부에 관심이 적었고 장학금 제도가 약했기에
시험성적에 치열하지 않았다.
그러나 철학과 공부는 달랐다.
학생들의 대분이 나보다 어렸고
이들은 공부에 열심을 가졌다.
물론 당시 민주화운동(民主化運動)의 주역이
철학과였기에 최루탄 속으로 뛰어들고
돌을 던지는 일에 철학과가 앞장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학생들의 경제사정이
넉넉치 않기 때문에 장학금을 향한
도전의식이 매우 강렬했다.
신기한 현상은 철학과를 다니는 학생 중에는
인문사회학과 전체 수석(首席)도 있고
제3지망으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철학과에 배정된 친구도 있었다.
성적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소신지원한 친구도 있는 반면에
철학과에 배정된 사실을
인생의 패배로 받아들여
수업시간에 허공(虛空)을 응시하는
친구도 있는 혼재(混在)된 공간이었다.
이런 환경에 처한 다양한 학생들 속에서
장학금을 받는 위치에 있기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을 꾀해야 했다.
게다가 나는 상대적으로 연로(年老)했다.
철학과시험문제는 어떠했을까?
객관식 형태를 띄진 않는다.
모두 주관식 문제였다.
쉽게 말하면 문제가 기껏해야 두개가
가장 많은 것에 해당했다.
대부분은 문제는 단 하나였다.
단 하나의 문제를 A3시험지에 어떻게
논리적으로 채워넣는가가 과제였다.
어떤 교수님께서는 시험감독하러 오셔서
"___________" 이런 문제 어때?
모두 다 쓸 수 없고
하나도 쓰지 못하는 사람도 없는.
마치 즉흥적인 것 같은 그러나 계획된
시험문제를 칠판에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예상문제"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4월 중순에 있는 중간고사를 위해
3월 말부터 시험준비를 시작했다.
학교도서관에 새벽6시에 도착해서
일단은 빈자리를 찾았다.
사실 대부분의 좌석은
기숙사생들과 그들이 친구를 위해
사전(事前)에 확보하기에
내 자리를 새롭게 차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교수님 입장이 되어 예상문제를 정리하고
아직 진도가 나가지 않은 부분을
예습(豫習)을 해서 수업시간에 확인을 하고
중간고사 일주일 전에
과목당 예상문제와 답안지를
A3용지 앞뒤로 빽빽하게 채워서 정리를 한다.
그리고 시험당일에는 도서관이 아니라
공강의실(空講議室)을 찾아서
빈자리에 앉아 암기(暗記)에 들어간다.
외우고 또 외운다.
암기하는 방식은 아주 원초적이다.
본래 암기에 자신감이 없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의 견고한 뇌(腦)를 정(釘)으로 쪼아
조각(彫刻)하듯 심혈을 기울였다.
중간고사가 끝날 때 즈음
나의 체중(體重)은 평균적으로
5-6kg정도 빠져있었다.
중간고사를 마치게 되면
나는 속으로 쾌재(快哉)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