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MT
"당신은
MT(Membership Training)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질문이 생뚱맞을까?
대학에 들어가면 누구나 하는 일이다.
나에겐 이런 단어를 사용할 날이
전혀 없을 줄 알았다.
우리과에는 나와 동갑인 친구 한명
나보다 두살많은 형이 두명이 있었고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豫備役)이 서너명
그리고 여학생이 다섯명이 있었다.
다른 학과와 비교해보면
나이든 사람의 비중이 약20%나 되니
적지않은 수라고 볼 수 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최고참이 아니라는 사실이.
한 달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반대표가 과대표의 전달사항이라고 하면서
신입생 MT를 가자고 한다.
장소는 MT의 성지로 알려진 일영.
"형님들도 함께 가실거죠?"
술먹기 좋아하는 박兄은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그것을 질문이라고 하냐? 철학도가?
이兄도 갈거지?"
넌지시 나에게 바톤을 넘긴다.
나는 이미 결혼을 한 전도사인 김兄을
바라보았다.
"김兄도 갈꺼야?"
같은 나이의 김형도 고개를 끄떡인다.
예비역들은 최고참인 우리들의 참석을 근간으로
다 참석하기로 했다.
시인(詩人)을 꿈꾸는 박兄은
"철학과 막걸리, 그리고 산의 흥취
불가분리의 관계가 아니겠니?"
마치 당장이라도 떠날 것 같은 기세다.
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다.
만사를 제쳐두고 삼십줄의 대학교 신입생
그것도 철학과의 MT를 기대하며
일영에 도착했다.
이곳이 MT村인가?
넓은 공간이 있는 방안에 둥글게 자리를 잡고
서로를 바라보며 앉았다.
몇몇교수님과 대학원 조교가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잠시후 커다란 대야 아주 큰 대야가
둥글게 앉은 중앙에 놓여진다.
드디어 조교가 사회를 보면서 시작된다.
"먼저 교수님의 인사말씀과 격려를 통해
MT를 시작하겠습니다."
키가 작고 갈색 뿔테안경을 쓰고
기름을 바른 희끗희끗 하얀머리의
조교수(趙敎授)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제군(諸君)들.
철학과에 들어온 것을 환영합니다. ..."
이 교수님은 희랍철학. 예술철학의 독보적인 권위자일 뿐 아니라 군사정권 당시 해직교수(解職敎授)였다가 복직(復職)하신
고학년생(高學年生)들도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저명하신 분이다.
천천히 읖조리듯 말씀하시는 어조(語調)에
모든 학우들이 귀를 조아리며 집중하고 있었다.
짧고 굵게 또박또박 던져지는 말씀이
숨을 쉴 수 없을정도로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드디어 말씀이 끝나고 숨을 내쉬려는 순간.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든다.
"교수님 질문 해도 될까요?"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조교는 약간 당황한 듯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인사말씀에 무슨 질문을...'
그러나 철학은 질문으로 시작하지 않는가?
손을 든 학생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조교가 약간 쭈삣쭈삣하는 사이에
손을 든 친구는 아주 간명(簡明)한 질문을 교수님께 던졌다.
"교수님!!! 철학과를 졸업하면
진로가 어떻게 되나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참석한 모든 친구들이
아주 큰 목소리로 박장대소(拍掌大笑)했다.
'아니 철학과에 와서 그런 질문을 하다니!"
"지금 MT시간에 교수님께 그런 수준 낮은
질문을 해도 되는거야?"
"세상에 저런 형이하학(形而下學)수준의
질문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 즐거운 MT시간을 무거운 질문으로
시작해야 하냐구?"
아마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박수를 치고
어떤 친구는 발을 구르며 웃었다.
나는 교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실까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다렸다.
사실 이 자리에 함께 하는 1학년생들은
작년 교회에서 가르쳤던 고3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신학을 공부하고 삼십대에 들어선 나에게
이 질문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셨다.
"매우 중요한 질문이지요.
철학은 이와같이 의미있는 질문으로 부터
시작하지요. 또한 이 질문에 대한
의미있는 토론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어보고
각자에게 적절한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
철학함이 있어요.
이제 이렇게 철학을 시작하는 거에요."
가벼운 웃음 끝에 교수님의 진지한 대답이 끝나자마자 질문을 한 김군(金君)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제대로 된 질문을 제기한 용사가 된
것 처럼.
일종의 의식이 끝나자 가운데 마련된 큰 대야에
막걸리가 부어지기 시작한다.
몇몇은 바깥으로 나가면서 크게 말한다.
"저희는 삽겹살을 구울께요!!!"
나는 막걸리가 흥건한 자리보다
삼겹살을 굽는 자리를 선택했다.
김전도사도 내 뒤를 따라왔다.
"삼겹살을 굽는 자리가 더 좋지.
나는 고기굽는 일이 천부적이야."
철학과 MT라서 그러한가?
학생들은 막걸리, 두부, 김치
그리고 삼겹살을 먹으면서 자리를 뜨지
않았다.
나는 삼겹살을 굽고 막걸리를 나누는
자리를 오고가면서 새로운 얼굴들을 익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학교학생들도 이런 식으로 MT를 갖는가?"
새벽 세시쯤 되었을까?
고기를 다시 굽기 위해 방을 나서는데
다른 대학교에서 온 친구들의 MT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살며시 그들이 있는 소란한 소리가
울려퍼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불은 꺼지고 음악소리는 볼륭이 최대치로
그리고 학생들은 춤을 추느라고
내가 들여다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와우 철학과 MT와 분위기가 전혀 다르구나!!"
새벽 다섯시가 되어 동이 틀때까지 철학과 MT는 지속되었다.
바로 이때 태어나서 처음 술을 마신 것 같은
S군(이 친구는 2학년때 자퇴를 하고
다시 Y대에 입학을 했다. 후에 유수한 신문사에
주필(主筆)이 되어있다.)이 술을 이기지 못하고
내 앞으로 다가와 내 품으로 엎어졌다.
마치 큰 바위가 높은 언덕 위에서 나에게 떨어진 느낌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