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것인가?
얼떨결에 1학기가 끝날 즈음
어린 학생(남.여) 둘이 여행을 제안했다.
"우리 집이 목포(木浦) 유달산(儒達山)아래인데
함께 놀러가지 않겠어요?"
(지금 남자친구는 목회자가 되었고
여자친구는 목회자의 아내가 되고,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사회복지 박사과정에 있다.)
나는 또다른 경험이겠다고 생각하고
기꺼이 동의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기차여행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낭만적인 이야기만 들었다.
세명은 6월말 영등포역에 모였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비둘기호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어!! 좌석표가 없네?
그냥 아무 죄석이든 앉는 것인가?"
이 질문은 열차에 오르자마자 무의미해졌다.
열차 안은 승객으로 만석(滿席)이어서
발을 디딜 틈도 없었다.
머리 위 짐칸도 각종 짐으로 채워졌고
좌석은 물론 서서 가는 사람들로 가득해
마치 만원버스가 아닌
지옥철이라 일컫는 지하철을 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열차는 역(驛)마다 정차(停車)를 하는데
내리는 승객은 없고
승객만이 꾸역꾸역 탑승하기에
열차 안의 승객들은 밀리고 밀려왔다.
수원역(水原驛)에 정차할 즈음
나는 "이대로 목포까지 갈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두 다리는 후들거리고
목발을 짚은 두팔에는 찌릿찌릿 전율이 오고
온몽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이젠 두통(頭痛)까지 몰려오면서
구역질까지 나올려고 했다.
"이렇게해서 목포까지 갈 수 있을까?"
마침 좌석에 앉았던 군인(軍人)이
내표정을 보고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 자리에 앉으시죠."
나는 "괜찮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조차
내뱉지 못하고 내어준 좌석에
풀썩 앉고 말았다.
그제서야 군인얼굴을 올려다보며
"고맙습니다 죽는줄 알았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개인별좌석이 아니라
긴좌석에 세명이 앉았기에
도대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를 들 수도 없고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다리에는 피가 통하지 않아 저려오고
어깨조차 콘크리트 속에 박힌 느낌이었다.
목포행 완행열차는 8시간을 거쳐
10시간동안 지속되는
아니 내생각엔 하루종일 기차에
짐짝처럼 실려가는 것 같았다.
아니 지옥(地獄)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얹힌 기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광주송정역에 도착했다.
"앞으로 목포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니?"
"네시간 동안 더 가야할껄요?"
"뭐라고? 앞으로 네시간을 더?"
"너무 힘들지요? "
"아니 목포까지 가려면 늘 이렇게 오랫동안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니? "
"네. 항상 이렇게 이동해요."
"나는 더이상 이 기차를 타고 가기가 어렵겠다."
나는 거의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힘없이 말했다.
"그러면 여기에서 내려요 너무 힘드시면.
내려서 시외버스를 타고 가면 되요."
"그래도 되겠니? 우리 여기에서 내리자."
우리 셋은 기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길은
마치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목포에서 유달산, 영산강은
너무 좋았다.
무엇을 먹고 지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여튼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신기한 것은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통해
겪었던 고통은 어느새 사라졌다.
시외버스를 타는 순간부터.
"얘들아 서울로 갈 때
다른 교통수단은 어떠냐?"
"무궁화호 열차가 있어요.
그리고 새마을호도 있구요."
"우리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가자."
모두 동의를 했다.
얼굴 표정을 보니 그들도 꽤 힘들었던 것 같았다.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가는데
우리모두 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열차 새마을호 아니냐?
어제는 비행기를 탄 기분이라면
오늘은 로켓 위에 올라탄 기분이다.
참으로 빠르다."
나의 인생에 다시는 완행열차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