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까?
철학과 2학년 중반이 되면서
나에게 고민이 생겼다.
사실 인생은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십대 청소년들만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 없는 사람만 고민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돈이 많을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건강할수록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이유는 지키고 보존할 것이 많으니까.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하에서는
단 한사람만 신경쓰면 된다.
그러나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 혹은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 하에서
고민이 얼마나 많을까?
조강지처(糟糠之妻)나 조강지부(糟糠之夫)를
곁에 두고 바람을 피는 사람들은
순간은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속이거나 눈치를 보느라고
얼마나 고민이 많을까?
철학을 공부하는 일이
나의 적성에 매우 부합했다.
게다가 신학공부를 하면서
공부에 흥미를 갖게되었는데
철학공부는 더 큰세계로 깊이 들어가도록
나를 이끌었다.
소위 심연(Abyss, 深淵)의 세계라고 할까?
이런던 중에 고민이 생겼다.
철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3년동안 공부를 하고 다시 2년 뒤에
목사안수를 받을까?
그 이후에 독일로 유학을 가게된다면..
나이 사십이 될텐데.
다른 하나는 철학과를 3학년에
1년간 휴학을 하고
신학대학원 1년과정을 이수하고
(이미 신학을 4년간 공부를 했으니까)
다시 철학과에 복학한 후
철학과를 졸업할 때 목사안수를 받을까?
이러저런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2학년 2학기 장학금을 위해서
치열하게 전쟁에 돌입해야 했다.
사실 휴학하게 되면
지금 1학년 학생들이 매우 열심히
공부를 할 뿐 아니라
여학생들도 많아서 장학금 전선에
더욱 열정을 가져야 하는데
(여학생들은 시위나 기타행사보다는
공부에 더 심혈을 가하는 경향이 높기에
물론 철학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1학년여학생들은
이념에 치우친 2학년과 또 다르다고 해서)
사실 도서관에 앉아있으면
철학과와 다른 과 특히 어문계열 여학생들은
확연히 다른 특징으로 대별(代別)된다.
어문계열(語文系列) 학과 여학생들의 의상은
화려하다.
특히 3월 ~5월 사이에 봄이 절정일 때
이들의 의상과 화장은
도서관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와 반대로 철학과 여학생들의 의상은
전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저 여타 남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단 한두명을 제외하고는.
물론 그 한두명도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고.
철학과에 다니면서
살아가야 할 인생에서 선택해야 할
경우의 수가 많아지니까
고민도 늘어나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가야하는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나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돌이켜보건대
고민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그다지 결정적인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고민하는 과정조차 없었다면
아니 고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행복에 힘겨운 삶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여튼
이런저런 고민과 함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