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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워요 나는!"

여학생의 고민 1,2

사례 하나.

35년전. 한 여학생(당시 23세)이

나에게 고민(苦憫)을 털어놓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저의 호적등본이 복잡해요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했어요

그런데 어머니에게 자녀가 없었어요"

"아니 그대를 낳으셨잖아요."

"그래서 문제에요.

어머니에게서 자녀출산 소식이 없자

할머니께서 대(代)를 이어야 한다고 해서

아버지에게 씨받이 여인을 들이셨어요.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을 할 수 없다고.

그런데 씨받이 여인

-작은 어머니(?)가 된-이

2남 2녀를 낳아서

어머니 아래 자녀로 등재했어요."

"아니 그런 일이 실재로 존재하구만요."

"그후 어머니가 막내(?)이자

첫번째 자녀이자 외동딸인 저를 낳으셨어요."

"흠... 여기까지만 들었는데

그대의 존재가 애매모호하고

이복형제(異腹兄弟)들의 입장도

만만치 않겠는데요?"

"아.... 옛말로 하면 정실부인(政實婦人)의 자녀는. 저혼자이지요.

그런데 제가 아들이 아니고 딸이에요.

그러다보니까 할머니에게는

나의 존재가치 무의미한 것이고.

내 어머니는 호적(戶籍)에

당당하게 올라있음에도

마치 첩(妾) 같이 대우를 받고

제신세도 마찬가지가 된거에요."

"이이고 그렇겠네요

성장과정이 순탄치 않았겠어요.

아니 이복형제들의 처지도 비슷하겠네요?"

"하여간 저는

첩의 자식처럼 대우를 받았고

이복형제들에게도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들이나 나자신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잖아요.

문제는 내가 사귀어야 할 남자들에게

아니 그 가족들에게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나의 가정사(家庭事)를 이해하실 것인지

참 고민이되요.

알고보면 이복형제들에게도 상황이 다르지않고

또다른 고민이 되겠지요?"

"그랬겠네요. 이복형제들은 '우리 어머니는

씨받이고 호적에 등재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도 상대방이

이해하기는 더 어렵겠지요. 흠."

"맞아요. 이제 혼기(婚期)가 다 되어가니까

지금 이복형제들은 마음이 더 불안한 것

같아요. 사실 이 고민과 갈등을

우리 형제자매들이 겪어야 할 일은 아니잖아요?

부모들이 겪어야 하는데...

저분들은 대(代)를 이었다는 것에

사명을 다 감당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심각하네요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요?"


Photo by R.G.Y. MokPo

사례

37년전.

20살 된 대학교 신입생이 된 여학생이

아주 슬픈 표정을 하고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저... 흠..."

여학생은 한참동안 머뭇거렸다.

약15-20분이 지났을까?

"오늘 말씀하기 어려우면 나중에

다시 오셔도 됩니다."


여학생은 내 등 뒤에 걸려있는 액자를

초점없는 눈빛으로 응시하다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결심을 한듯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말씀 드릴께요."


나는 자세를 고쳐앉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다시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네 제가 지금 말씀드리지 못하면

평생 가슴에 안고 가슴앓이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야 할 것 같아요."

"네 잘 하셨어요. 자, 이제 들어볼까요?"


잠시 긴호흡을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나서

의자에 허리를 푹 집어놓고 입술을

열기 시작했다.

"저는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아요.

아니 나는 아버지를 증오해요.

사실 증오하다 못해 아버지께서

조금이라도 나에게 다가오거나

눈빛을 주기만해도 내 몸에 식은 땀이

흐르면서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도망치려고 합니다. 아니 도망가요."


"무슨 심각하고 끔찍한 일을 겪으셨군요."


"눈치를 채셨군요."

"이미 그런 분위기를 말씀하셨지요."

"네.... 사실 제가 여섯살때부터 열살때까지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어요.

당시 저는 뭐가 무엇이지 몰랐지요.

아빠가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그 일이 끔찍한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게되었나요?"

"열살이 넘었을 때, 나는 싫다고

아빠에게 말했는데....

아빠는 잠간이면 된다고 자꾸 귀찮게 해서

엄마에게 말했어요.

물론 아빠는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때 엄마의 표정을 읽으면서 순간

나쁜 일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어요.

엄마의 표정이 칠흙같이 변했었거든요."


"너무 힘들었겠어요. "

"사실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으면서

아빠가 정말 나쁜 짓을 나에게 했다는

그 사실을 리얼하게 인식했지요.

이미 그 때는 늦었지만...

내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가 패인 후지만."


"충분히 이해되요.

딸을 다른 사람과 그들의 폭행으로부터

지켜주어야 할 아빠라는 사람에게서

도리어 몹쓸 짓을 당했다는 사실이..."


"그 때 이후로 부터 아빠의 얼굴을 보기도 싫었어요. 나를 더 미치게 만드는 일은

아직까지 사과는 커녕,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척, 뻔뻔하게 대한다는거에요

그런데 선생님....

앞으로 저는 어떻게 해야하지요?"


학생은 눈물도 메말랐다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똑소리나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내게도 어느 정도 상식은 있어요.

'과거는 지나간 일로 간주해라.

그저 파도가, 기분 나쁜 파도가 나를

스쳐지나갔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고 내가 만들어가는

나의 삶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나의 인생이...' 이런 말은 다 들었었구요.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이미 그리 정리했구요."


"다행이군요. 잘 했어요.

그러면 지금 나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과제는?"


"저 사실. 남자친구가 있어요.

내가 나이가 어려서

이 친구와 얼마나 오랫동안 사귈 지는

잘 몰라요. 그런데 앞으로 결혼도 하게될텐데

하하하 사실 결혼생각은 없어요.

그렇지만 나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결혼을 하자고 하면...

그때 나의 이런 과거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실하게 고백해야할지를

고민이 됩니다. 그러면 그분이 용서해줄까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렇겠군요. 사랑은 진실해야 하니까.

그런데 궁금한게 있어요.

용서를 받을 일을 하셨나요?"


"글쎄요. 그래도..."

"입장을 바꾸어보면 어떠할까요?

그리고 파도는 지나갔는데.

지나간 기억은 있겠지만 흔적은 남아있나요?

기억을 완전히 없던 것으로 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앞으로 행복이 중요하다고 했지요.

저는 백프로 동의해요. 그렇다면 ..."

"그렇겠지요. 아직 그 기억이 남아있나봐요."

"그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더 중요하겠지요?

또 내일보다 오늘이 더 중요하겠지요?

어제 내가 걸어왔던 걸음 중 좋은 것,

유익한 것, 행복한 것들만 생각해서

오늘의 기초를 쌓아가기에도 시간이 짧겠지요?"

"그렇겠지요?

아직 내 안에...

먼저 나의 기억을 새롭게..."

"좋습니다 다만 어제보다 오늘을

오늘의 나를 더 사랑하고

오늘의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어떨까요?"


학생은 밝은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그일로부터 7년 뒤

여학생은 결혼을 하고 남매를 낳아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졌다.

가을 소슬 바람을 타고 내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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