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예배당(禮拜堂) 문을 열었다가

그래도 열어야 하나?

이야기 하나.(Case One)

오래 전 이야기이다.

독자건물이 아닌 주상복합건물에

세(稅)를 들어 운영하던 교회가 있었다.

이 글에서는 '예배당'이라고 표현한다.


이 예배당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에

4층에 있었다.

목회자는 인근 빌라에서 월세(月稅)로

생활하는 가난한 목사였다.

딱히 예배당을 관리할 분이 없었다.

그래서 목회자가 매일 출근하여

(사실 새벽 기도가 5시에 시작하니)

예배당을 관리하고 그곳에서 설교준비,

기도 그리고 교인상담을 하는 장소였다.

가끔 목회자가 예배당을 떠날 때는

계단에 설치된 철문을 잠그곤 했다.


어느날, 지나가던 한 분이

다급한 표정으로 예배당을 찾았다.

마침 목회자는 교인 심방을 위해

예배당을 떠났기에

예배당은 비었고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약 이십분쯤 지났을까?

심방을 마친 목회자는 예배당으로 돌아왔다.

별 생각없이 예배당에 도착하여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자물쇠로 잠긴 철문 앞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목회자는 놀라서 뒤로 넘어질 뻔 했다.


처음 본 사람이 예배당 입구에 서 있었기에

목회자는 두렵기도 해서

달리 무엇을 해야할 지 당황스러워 했다.


더욱 목회자를 당황스럽게 한 것은

낯선 사람이 분노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목사님이시요? "

"네 그런데.. 누..구 ..이신지요?"

"나는 이 자리에서 삼십분동안 기다렸습니다.

교회는 항상 열려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누구나 오라고 한 곳이 교회인데

정작 문이 굳게 닫혀있다면

오라는 말은 거짓이 아닙니까?"

목회자는 지나칠 정도로 논리적인 주장에

딱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른 채

주저하고 있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선생님은 누구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은 맞지만, 예배당에 낮선 이를

맞이할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목회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낯선 사람은 한마디를 더했다.

"그래도 교회는 열려있어야 하지 않나요?

기도하러 왔는데 문이 굳게 잠겨있어서".


목회자는 철문을 열고 낯선 사람을

예배당 안으로 인도했다.

용산의 모(某)교회 마당 PHOTO by R.G.Y

이야기 둘(Case Two)

어느 목회자는 목회를 시작할 때

나름대로 철학과 신조 하나를 세웠다.

"언제나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예배당을 만들겠다."


그는 목회를 시작했다.

열정적으로 설교도 하고 심방도 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소신대로 일년 365일

예배당은 개방되어 있었다.


어느 평일 오후

예배당에 와보니 낯선 몇사람이

예배당 장의자(長椅子)에 누워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노숙인(路宿人)들이었다.


목회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예배당이 이런 분들에게

잠자리가 되어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꺼야."


사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

종종 일어났었다.

최근에는 이분들 중 몇사람이 담임목회자를 보고

인사도 했다.

낯이 익었던 모양이다.

이들은 수요일 토요일 주일 등 행사가 없는 날을

골라서 예배당을 숙소로 사용하는 듯 했다.


몇달이 지났다.

목회를 시작한 지 약 3~4년이 지났을 때

신기한 일이 생겼다.

설교를 하려고 앰프 등을 찾았는데

찾을 수 없었다.

몇달 뒤에는 스피커도 사라졌다.

그리고 벽에 걸려있던 선풍기도 없어졌다.


기가 막혔다.

목회자는 마이크 없이 설교했다.

선풍기도 없이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예배를 드렸다.


더더욱 두드러진 현상은 4~50명되던 교인들이

차차 줄어들더니 15~6명만이 남았다.

이번주에 한가정이 예배당을 옮기겠다고

인사를 하며 마지막 예배를 드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예배당을 개방하겠다는 원칙을 포기해야 하나?"

딜레마에 빠졌다.


그는 견디다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예배당을 문 닫았다.

지금 그는 전라남도 시골에서

6~70이 넘은 어르신 3~40명을 중심으로

농촌 목회를 하고 있다.


예배당을 개방해야 하나?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