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도시락을 싸지 않았다.
오늘은 화요일이다.
어제는 점심식사로
김밥을 먹었다.
아내는 아침7시에
김밥가게로 달려갔다.
"'우엉 김밥'이
당신건강에 좋을꺼요."
아내는 도시락을 싸거나
김밥을 구입할 때도
"건강, 건강"을 외친다.
"여보! 요즘은
영양과다(營養過多)시대에요."
동어반복(同語反復)형식으로
의미없는 대꾸를 하곤한다.
사실 우엉이 아무리 영양기가 높아도
매일 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날은 김밥의 1/3을
슬쩍 버리기도 했다.
커다란 죄의식을 가슴 깊이 안고.
오늘 아침.
아내는 비명(悲鳴)을 질렀다.
"아악!!!!!
아침밥을 하지 않았어!!!!"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화장실로 이동했다.
아내는 나의 등 뒤에서 한마디 한다.
"어쩌지? 도시락 준비를 못해서"
세수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하면서
"나가서 사 먹으면 되지
그러나저러나 무엇을 먹어야 하나?"
출근을 하면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내가 도시락을 싸지않았다."
그러자 지나가던 지인(知人)이
내 말을 들었는지 한마디 던진다.
"아내가 선생님을 버리셨군요."
이 말을 듣자마자 무심결에
나도 모르는 말이 터져나왔다.
"그래요 버림받았나봐요..."
그러자 그분도 나도 서로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마치 진심을 들킨 것 처럼.
나는 사무실에 들어와 앉았다.
가을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도시락이 차지했던 책상 오른쪽이
허전해서 가을바람이 그곳에 모여있다.
"왜 안떠나는거야?"
"나는 이곳이 좋아요.
오늘만은 이곳에 머물고 싶어요."
바람과의 대화가 이어질 즈음.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저... 단풍 보셨어요?"
단풍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투박한 김대리,
오늘따라 단풍타령이라니.
"어!!!
오늘도 도시락 없어요?
사모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나봐요?"
도시락 하나로 인해
버림도 받았다가
이제는 분노로 이어진다.
나는 가을바람이 머물고 있는 그곳을
오랫동안 응시하면서 중얼거렸다.
"맞아요.
버린 게 아니라 화가 났을꺼야."
그리곤 다시 천박한 내 자리로
생각을 옮겼다.
"오늘 점심 어디에서 무엇을 먹지?"
아직 세시간이나 남았는데
화가나서 나를 버린 아내보다는
점심메뉴로 인해 골똘히 생각에 잠긴
나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