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대화가 가능할까요?
광나루 신학교정의 봄은 아름다웠다.
지적회사 정류장에서 내려 광나루 교정까지
목발을 짚고 올라가는 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고난의 길과 같았다.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 The Way of Sorrow)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개발이 되지않은 듯한 주택가가 보이고
아침 등교를 하는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가다보면 마지막 골목길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펼쳐진다.
정문을 지나면 다시 가파른 길이 등장하고
운동장을 왼쪽 옆에 두고 지나치면
교실로 가득한 거대한 사옥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한쪽에서는 경건훈련을 한다고
기도와 찬송소리가 메아리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학문에 정진한다고
두꺼운 원서를 들고 오가는 학생들이
그룹을 지어 모여있는 양태도 눈에 띈다.
대성학원에서 공부를 하던 고대중퇴자.
그는 누나의 소원대로 서울대에 들어갔다.
가끔 연락을 나누다보니
그는 정치외교학과 (政治外交學科)에
입학했다고.
그런데 똑똑해서 그런가?
이 친구는 "진리(眞理)"에 대한 탐구를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거야.
당시 김용옥 교수가 TV에 나와서
인기를 끌던 시기였지.
이 친구는 나에게 물었어.
"형님!
진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다양한 학과의 과목을 듣기시작했다고.
특히 동양철학 관련 과목을 수강한다고.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얼굴보고 싶다고.
아마 그가 3학년 때일꺼야.
내가 철학과 휴학을 하고
신학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3월에서 4월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나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는 광나루 언덕
장로회신학대학 교정으로 찾아오겠다고...
나는 보고싶었고 만나고 싶었다.
그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깊게 나누길 원했다.
금요일 오후.
점심시간이 지나서 마당에 친구들과 함께
서 있었다.
저기 언덕 아래에서 승려복을 입고
머리는 빡빡깎고 고무신을 신은
한 젊은이가 걸어올라오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함께 서 있던 친구들의 시선은
모두 그를 향했다.
마치 그가 와서는 안될 곳을 온 것 처럼.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두 손을 흔들면서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아주 허스키하고 굵은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그의 목소리에 운동장에서 놀던 학생들이
나와 이 친구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스타인가?"
나는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반겼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나를 안았다.
승려복을 입은 친구를 처음 본 신학생들.
게다가 신학대학교정에서 그를 만난
전도사들은 기이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승려가 된 것인가?"
"아니요. 암자(庵子)를 찾아다니다보니
이런 옷차림이 된 거에요.
승려도 아니고 승려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참. 박형(兄) 특이해요.
그런데 진리는 찾았나요?
아니 암자에서 도(道)를 깨달은 분을
만나기도 했나요?"
"형님.. 사실 실망(失望)했습니다.
암자비용만 비쌀 뿐이고
환경이 좋은 암자는 많은데
도를 닦거나 도를 깨달으려고 집중하는
그런 분들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그가 열정적으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는 나와는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기독교 안에 그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도(道)"라는 관점에서 서로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폭넓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나와 박형은 교정에서 내려와
커피숍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전공공부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너무 외도했어요."
나는 헤어지면서 성서 한구절을 인용했다.
"예수는
"내가 길이다(I am the Way.)"라고
말씀하셨지요.
길(道. The WAY)는 막연한 장소에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 길(The WAY)을 품고 사는
사람 안에 있지 않을까요?"
서로 웃으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지금도 궁금하다.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