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棺)을 끌고 다니는 사람
언제부터인가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TV전자학원을 다니던 때
나는 깊이 고민했다.
"나의 존재는
살아가야 할 가치가 있는가?"
내가 사장이라면
나를 채용(採用)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가야할 곳은?
이즈음 내 눈 앞에 등장한
인상깊은 장면이 있었다.
"관을 끌고 다니는 장고(Jang-go)"
그는 왜 관(棺)을 끌고 다니는가?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는 인생에서 직면할
죽음의 실재를 인식하고
죽음을 끌고 다니는 존재이다.
멋있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그려본 나의 마지막은
이렇게 화려한 모습은 아니었다.
단순히 죽음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존재.
나는 5층 아파트 다락방에서
뛰어내리는 상상도 해 보았다.
"나는 어떻게 될까?"에 대한 물음보다
"내가 떠난 뒤 지인들의 표정은 어떠할까?"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어렸을 때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난 뒤
나는 섬뜩한 그림을 나에게서 발견했다.
카뮤의 "이방인(異邦人)"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낯설게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을
나에게서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쉽게 잊혀지는 것을...'
그러던 어느날.
나는 빛이 한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공간에 갇혀있었다.
그 공간의 크기는 자로 잰듯
나의 신체사이즈와 똑같았다.
그래서 나는 옆으로 몸을 돌릴 수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점점 숨이 막혀왔다.
아니다.
나는 숨조차 쉬지 않고 있었다.
"이게 뭐지?
내가 죽었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벽을 두드리는 것도 불가능해서
소리를 지르는 것 밖에 없었다.
"나. 여기 있어요.
밖에 누가 있나요?"
순간, 내 목에서 터져나오는
음성의 파장이 내 귀에도 움직임이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직감했다.
왜?
나 자신조차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
아니 그것 뿐이 아니었다.
어떤 소리도 나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이것이 고요함이었나?
이것이 소리없는 세계인가?
나도 되돌릴 수 없는 소리라면
이제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어떤 흔적조차
남길 수 없다는 소름돋는 현실에
나는 비로서 "끝"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아!!!!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끝"이구나.
"그래 나는 죽음 가운데 있구나."
그렇다면.....
무엇을 남기고 나는 이곳에 있을까?
무엇을 남기려고 그동안 수고했을까?
매순간 호흡하며 씨름했던 순간들이
허무(虛無)란 단어로 정리되는가?
지금 빛이 없는 곳에 내가 있는가?
빛 조차 인식할 수 없는 곳에 내가 있는가?
아니 빛이란 무엇인가?
애초에 빛조차 없었던 것은 아닐까?
사방이 딴딴한 것으로 가로막힌 여기에
내가 있다는 그것만으로
나는
존재를 넘어(beyond the Existence)
있을 뿐이다.
서서히 나는 "빛"이란 용어조차
낯설게 느껴진다.
본래 이런 곳에 내가 있었지!
그래도 관(棺)을 지고 가는 사람
관(棺)을 자신의 등 뒤로 놓아두고
맨 몸으로 끌고가면서도
"관(棺)이 어디에 있지?"라는 질문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존재
그게 나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