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였다.
"죄송해요 전화번호를 몰라서
주일인데 교회로 전화를 했어요 .
우리 만나요."
나는 깜짝 놀랐다.
교회 사무실에 다른 분들도 계셔서
나는 알겠노라고 형식적으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일까?"
이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그녀의 대한 생각은
다른 이성(異性)에 대한 그것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여전히 그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알고있는 정보에 비해
훨씬 못미치는 정도
아니 거의 백지(白紙)와 같았다.
그런데 이날 전화기로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는 다급하고 직설적이었다.
당황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나였다.
정신차리고 빡빡하게 이루어진
주일 일정을 마치고 허기진 모습으로
집으로 갔다.
이젠 내 차례이다.
'약속시간에 나가야 하는가?
나가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나?'
실제로 나는
이성과 데이트를 할 여건이 되지않았다.
아직 공부를 하고 있고
나이는 삼십이 넘었지만
자립(自立)이나 독립(獨立)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할 지
나의 뜻(志)과 방향(方向)을 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가끔 어렸을 때
옆에 살던 두명의 형님이 떠올랐다.
두분은 형제지간(兄弟之間)이었다.
첫째 형은 완벽주의자(Perfectionist)였다.
가난한 형편에 자신에게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어떤 형태의 이성교제(異性交際)도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둘째 형은 전혀 다른
자유연애주의자
(自由戀愛主義者, Agapemonite)였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다수의 여자친구들과 사귀기를 지속했다.
두 형들은 공부도 잘 했지만
사고와 철학,
특히 연애에 대한 가치관이
전혀 상반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둘째 형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첫째 형은
서른 다섯이 넘도록
미혼(未婚)상태에 머무른 것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떤 형태를 지향해야 하는가?
실제로 두개의 목발을 짚고
두 다리 모두 보조기(補助器, Orthosis)를
착용한 후배를 알고 있다.
그는 두뇌가 매우 명석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부모도 계시지 않고
동생도 시위전력(示威戰力)으로 인해
구속된 상태였다.
그는 나와 같이 무엇을 해야할 지
정하지도 않은 채 독서실에서
공부만 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 D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면접때문에 불합격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머리를 빡빡 깎이면서까지
집에 감금당하기도 하고 탈출도 감행한
용기있는 여학생과 살림을 차렸다.
진짜 아무것도 없는 무일푼.
둘 다 처지가 같았다.
이 둘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 모두
그들의 사랑을 무모한 것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년 뒤
후배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임용되어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그의 와이프도 작은 회사에 다니면서
대학입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제생활을 어렵게 감내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림을 키워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직접 목도하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미래를 그러보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미래는 캄캄하지만
어두움 너머 어디엔가 빛이 있으리라는.
그러나 어떤 기대도 없이
약속 장소로 나가기로 작정했다.
준비도 안된 나는
기대없이 그러나 기대를 갖고
역설적인 마음자세로 나가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