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일까 부담일까?
과거에 기껏해야
60도 넘기진 못했던 시절
이때는 장수가 축복이었고
소망이고 기대였다.
21세기 들어서
오늘날에는 어떠할까?
100세시대를 넘어서
120세를 바라본다고 한다.
노아가 홍수 이후로 무지개를 본 뒤로
인간의 수명은
120세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꿈이
오늘날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오래 산다는 것이
축복일까 아니면 부담일까?
사회복지 현장에서 보면
장애인, 노인, 아동, 청소년
그리고 여성
이렇게 5개 그룹으로 분야를
나눌 수가 있다.
사회복지협의회라고 하는 이름으로
다양한 분야의 사회복지사들이 모여서
1년 동안 함께 의제를 제시하고
논의하는 때가 종종 있다.
이 분야들의 공통점은
"문제(problem)"가 아니라
"사람(person)"을 대상(object)으로
사회를 바라본다는 게 있다.
각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 나누는 이슈는 어떤 분야도
'쉬운 곳은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문제 중심으로 접근
(problem based on approach)하게 되면
그 문제만 해결되면 간단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제라고 하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개인의 성격(personality),
성장해 온 가족의 배경, 생애 주기,
지역사회 그리고 정부 정책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얽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보통 문제는 자원의 결핍 ,
혹은 자원 분배에 있어서 불평등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접근이 틀리다고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지구상 어떤 시대에도
풍족한 자원이 있었던 시대는 없었다.
단 에덴동산을 제외하고는.
동시에 자원이 부족했던 시대에
모든 사람은 불행하거나
동일한 문제를 겪는 것도 아니다.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재 상태에 만족하거나
풍족한 자원의 공급을 넘어서
나름대로의 의미(意味, meaning)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바로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믿을 뿐 아니라
또 행복을 누리며 또 즐기며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따라서 사회복지가 다루려고 하는 것은
자원 결핍으로 인한 문제보다는
문제라고 스스로 생각해서
그것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다루려고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비슷한 목표를 갖고 살아간다.
다름 아닌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것"이다.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것과
오해 살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의료 체계의 발전으로 인해서
어느 정도 성취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건강하고 오래 살면서도
왜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갈까?
왜 사람들은 서로 비교하면서
불평과 불만을 갖고 이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고 고통을 주며
살아가려고 할까?
게다가 60도 70도
이제는 어르신이 아니라
어린 나이에 속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70이 넘은
어르신들이 모인 공동체를 보면
성숙함이라든가 여유라든가
배려라고 하는 것을 찾아보기가 쉽지가 않다.
예를 들면 단적으로 이렇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된다.
이때 엘리베이터 앞으로
결사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름 아닌 어르신들이다.
엘리베이터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사람이 가득 차면 올라가고
곧 내려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 때나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오늘 내가 대하는 엘리베이터가
인생에서 마지막 엘리베이터인 것처럼
결사적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다름 아닌 어르신들이다.
왜 그럴까?
다양한 분야의 사회복지들이 함께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단 하나의 분야
즉 어르신 분야에 있는 사회복지사들이 공통적으로 되뇌이는 얘기가 있다.
그것은 이것이다.
"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아!
나는 결코 늙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내가 만난 어르신들 보면
가끔 이쁘고 좋은 부분도 있지만,
거의 90% 이상은
아름답지가 않기 때문이야."
게다가 일부 사회복지사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저 모습이 다른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장차 나이 들어서 내 모습이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야.
나도 그리 되지 말란 법이 없거든..."
.
그렇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고
나이 듦에 들어섰다는 것은
오히려 여유가 있고
어린 사람들에게 배려를 하고
굴곡이 많은 삶을 통해서
현실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지혜를 후배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그러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 눈에 비춰진 어르신들의 삶은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어떻게 보면 치졸하기도 하고
또 생존 경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런 모습들이
대다수 있다라는 말이다.
하긴 지금의 어르신들이 살아온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숨쉴 수 없는 답답하고 억압받고
억눌려진 사회 속에서
자신의 언어를 잃었고
그들의 삶 더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일제 시대에서 살았고 보다
또 70. 80대 되신 분들은
보릿고개를 넘어서
인권이라고 하는 것은
손톱만큼도 없는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시대상은
당시 일반적인 것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고 해서
모두 다 그렇게 갑갑하고
빡빡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은 21세기이다.
이제는 과거는 달리
과거의 고통스럽고
억압했던 시대를 관조하면서
오히려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아닐까?
한편으로는 요양원에 누워 계신
어르신들을 본다.
시립병원에 가서 피골이 상접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병약한
어르신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얼굴에서
과거 고통스러웠던 역사를 읽게 된다.
한 번도 편안하지 못했고 안락하지 못했고.
건강했던 것을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그 슬픈 과거를 오늘 우리는 볼 수가 있다.
아프다. 힘들다. 어렵다. 고단하다.
이제 우리는 2000년에 4분의 1을 지냈다.
또 4분의 1을 지나 50년을 바라본다.
조금 있으면
지금 우리가 어르신이라고 하는 그 시대를
우리도 살아가게 된다.
그때쯤 됐을 때
나는 어떤 어르신으로 살아가게 될까?
'나도 저 어르신처럼 살아가야지.'
후배들이 존경하는그런 어르신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난 저렇게 살고 싶어 싶지 않아!"라고
손가락질 받는 어르신이 될 것인가?
이제 오늘 살아가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나의 미래를
아니 곧 다가올 현재를 더듬어 본다.
이 글을 읽는 우리들 여러분들은
어떤 어르신으로 살아가겠습니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축복인지 아니면 슬픈 것인지는
이제 우리가 만들어 갈 과제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나를 보고
곧 맞이할 미래의 나를 한번
잘 생각해 보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