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에 대하여
사십대 민국과 은서가 카페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테이블에서 창가를 바라보며 푸른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평일 오후 2시.
다른 사람들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시각에 이 둘은 왜 이 카페에 앉아있을까?
석모도(席毛島) 좋은 아침 카페는 바다를 바라보며 아아를 마시며 무엇인가 생각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
민국은 연가(年暇)를 하루 사용하면서 압구정에서 이곳까지 달려왔다.
은서는 사표(辭表)를 작성하고 작은 빽에 넣고 회사에 출근도 하지않은 채 고양시 행신동에서 무작정 이곳으로 왔다. 누가 알려준 카페도 아닌데 차를 몰고 행주대교. 초지대교와 석모대교를 거쳐 달리다보니 전망좋은 카페라 생각해서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커피 한 잔에 벌써 한시간 삼십분 넘게 아무 말 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민국.
두시간 정도 지나서 잠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운터에 다가서 '라떼 한 잔 더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을 건네 뒤 카페 문을 나선다. 그는 파도가 힘겹게 일렁이는 바다로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은서가 창문으로 바라보는 시야에 민국이 들어왔다. 그녀는 바다로 내달리는 민국의 뒷모습을 보았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이렇게 시리도록 응시한 적이 처음이다.
"저분 왜 혼자 바다로 가는가?
왜? 그러지?
혹시 ... 혹시?"
은서는 민국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두려움이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것을 감지했다.
카페 안은 따스하고 엄마 품과 같이 아늑했다. 바리스타가 실력이 있는지, 커피 재료가 신선한지 알 수 없지만 드립커피는 향도 맛도 깊이가 있어보였다. '이 카페 나중에 친구와 함께 와야겠다. 그런데 회사는 내가 연락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아서 난리났을텐데.. 그런데 왜 전화한통이 없지? 나의 존재감이 이 정도였나? 그러던 말든지 내일 사표를 내면 뭐... 다 끝나는 건데... 그래도... 그렇지...은서는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입으로는 '어... 저 사람?'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민국에 집중하고 있었다.
"여기 라떼 나왔어요. 라떼... 어 어디 가셨나?"
바리스타는 민국을 찾기 위해서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민국은 겨울바다를 편한 마음으로 다가간 것이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았다. 지나간 사십사년동안 민국의 삶은 빌딩숲 안에서 이루어졌다. 비록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경주와 포항을 방문했지만, 이동하는 차 안에서는 눈을 감고 있었기에 바다를 직시하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푸르른 색은 처음 본다. 서울 하늘이 파랗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본 적은 없지. 바다는 정말 파랗구나.'
민국은 직장에서는 내일 부장으로 승진한다.
사실 부장이 되는 것을 민국이 바랬던 것은 아니다. 강남 한복판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줄곧 치열하게 경쟁을 하면서 이 자리까지 왔다. 그러나 부장이 되면 곧 이사가 되고 이사가 되면 계약직으로 전환이 되어서 회사를 떠나야 한다. 누군가는 부장이 되었다고 승진 턱을 내라고 하겠지만 그것이 그다지 기쁜 일은 아니다. 집에서는 '부장이 되면 뭐하냐? 장가도 가지 않고. 그렇게 홀애비 신세로 살다가 죽을 거냐? 매일 귀가 따갑게 들리는 이야기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그래 민국이는 지금 바다를 보면서 44년 동안 살아온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본다. '나에게 무엇이 남았을까? 승진 성공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푸른 바다 앞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은 도대체 어떤 존재의 이유가 있을까?' 민국은 조심스럽게 모래들 위로 다가오는 바닷물에 발을 담가본다. 처음에는 바닷물이 혹시 신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피해 폴짝 뛰기도 했다. 그러나 한 모금 한 주먹 바닷물이 신발 안으로 들어오자 민국은 무릎까지 잠길 정도로 바닷속으로 걸어가 본다.
은서는 빽을 조심히 열어본다. 그 안에 간밤에 써놓았던 사표가 그대로 있다. '어떻게 너는 도망가지도 않니? 사표를 바라보고는 다시금 시선이 바다를 향한다. 낯선 남자의 뒷모습. 그가 이제 바닷속으로 들아가고 있다. '아니, 왜 저래?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저사람 진짜 죽으려고 했는거야?' 은서는 갑자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내가 공연히 설레발하는 것 아닌가? 아니 저 남자 단순히 바닷물을 즐기려고 하는 것 같은데... 아냐 죽으려고 바다로 달려가는데 나혼자 놀라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면... 빨리 카페 바리스타에게 이 상황을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인숙은 안절부절못하는 상태로 앉아있었다.
잠시후 민국이가 허리 가까이 바닷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은서는 "꺄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동시에 카페 안에서 담소를 나누던 몇사람이 화들짝 놀라서 은서를 쳐다보았다. 바리스타는 빠른 걸음으로 은서에게 다가왔다. "저, 손님!!! 무슨 일이 있으세요? 혹 커피를 쏟으셨나요?" 은서는 창문 바깥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보세요 남자 손님이 바닷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남자 손님이 일부러 바다로 뛰어들고 있어요. 혹시 모르겠는데 목숨을. . . . 목숨을... " 바리스타를 비롯해 모든 손님이 은서가 가리키는 남자를 향했다.
순간 한 남자가 아주 빠른 속도로 카페 바깥으로 달려갔다. 채 1분도 되지않아 그 남자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정말 총알같이 빠른 속도였다. "저 손님... 손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빨리 바다에서 나오세요. 매우 위험합니다." 낯선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민국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웬 남자가 결사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오고 있었고, 카페 창가에 모든 사람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바닷물이 자신의 허리춤을 넘어 가슴 깊이 덮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내가... 이렇게 깊이 들어왔단 말인가?"
민국은 몸을 육지로 향해 돌렸다. 순간 민국의 몸은 파도에 휩쓸려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민국은 자신의 얼굴이 바다 속에 들어있음을 알고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민국이는 바다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 손쉽게 몸을 세우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낯선 손길이 민국의 허리춤으로 쑤욱 들어왔다. 그리고 목줄을 매달린 개가 끌려가듯이 자신의 육체가 뭍으로 이끌려가는 듯 했다. 순간 민국은 그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반은 비틀거리며 걷듯이 반은 바닷물에 실려 떠가듯이 뭍으로 뭍으로 이끌려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닷물에 적신 채로 모래밭으로 나왔을 때 민국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카페를 바라보았다. 창가에 얼굴을 들이밀고 민국을 바라보던 손님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를 지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죽으러 간 민국이 다시 생명을 회복했기에 박수를 치는 것인지, 자살시도를 한 남자를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살려낸 한 남자의 용기에 대해 환호하는 것인지 정확히 분별할 수는 없지만, 바다에서 물에 흠뻑 젖은 두 남자를 향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느 정도 카페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을 때, 여전히 두 남자가 손을 꼭잡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두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두 손을 놓았다.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포기하려고 하세요?" 민국은 이 낯선 남자의 말에 눈을 크게 뜬 채로 걸음을 멈추고 서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하. ..그러면... 제가 자살하려고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저를 구하시려고 달려오셨군요. 하하하 하하하 그게 아닌데. 하여튼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 낯선 남자는 민국의 대답에 어이없어 하면서 "그러면 제가 잘 못 알고 달려들었던 것입니까? 옷을 다 적셔가면서? 네?"
두 남자는 서로 바라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물에 빠진 커다란 쥐 두마리가 서로 바라보듯이.
어느새 카페 안에서 환호를 하던 손님들이 카페 바깥으로 다 나와 두 남자 곁으로 다가왔다. 괴성을 지르던 은서도 발걸음을 함께 했다. 동시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은서를 향해 시선을 모았다. 은서는 "왜 다를 나를 바라볼까? 내가 무엇을 잘 못 했나?"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의아해 했다. 이 때 민국은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아니 다들 왜 이렇게 나오세요? 모두 이 분과 동일한 생각을 하셨나요? 제가 자살시도를 한 줄로? 정말 그렇다면,... 오해입니다. 오해요." 은서를 비롯한 사람들은 눈이 똥그래지면서 다시금 은서를 바라보았다. "자살이 아니라고요? 그럼..왜....혹시 두분이 서로 아는 사이세요?" 이 말을 듣고 은서는 얼어붙는 것 같았다. "자살이 아니라고? 그럼.. 왜 바닷물 깊이...깊이 들어가신거죠?." 이제 은서의 질문에 모든 사람들의 눈빛은 민국을 향했다. ... "그런 것이 아니고..저도모르게 ... 바닷물이 푸른 색을 띤 것이 너무 아름답고 해서..저도 모르게 한 발, 한 발..들어갔는데... 이렇게 깊이 들어갔는지.. 몰랐네요.. 하여튼 이 분이 아니었으면 저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하게 말씀 드리자면, 자살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겠네요.. 아이구..콜록 콜록... 그런데...그쪽에서 먼저 사인을 보낸 것이네요.. 그리고 이 분이 선생님의 사인을 보고 지체없이 저에게 달려왔고...하여튼 저 때문에 때아닌 소란이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러나 옷을 다 적셔서 ... 어떻게 하지요? 저야 그렇지만..."
낮선 남자는 헛웃음을 켜면서 옷에 가득 침투한 물기를 빼내느라고 온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어쨋든. 선생님께서 .....이거 뭐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잘 되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저도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이벤트에 참여했으니... 누가 부탁한 것도, 강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제 스스로 달려들었으니..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해야지요.. 하하하.." 이 때 바리스타는 나서서 한 마디 한다.. "그럼.. 카페 안으로 들어가세요.. 제가 여러분 모두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대접할께요.. 감기 들면 안되잖아요..잠간이라도 몸을 데워야지요." 그녀의 말을 듣고 바깥으로 나온 사람들이 천천히 카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 모두 제자리에 앉았다. 이 때 은서가 나선다.. "커피 대금은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제가 따듯한 선물을 한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야 모든 사람이 웃으면서 박수를 치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좋아요. 좋아요. .오늘 아주 기쁜 날이네요."하며 화답을 한다.
어느 덧 시간이 흐르고 다시 침묵이 찾아올 즈음, 은서는 민국에게 다가간다.
"저...저는 은서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 민국도 웃으면서 대답한다. "저는 민국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나서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끼? 두 사람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각자 헤어졌다.
2년 뒤, 민국과 은서는 논현동 어느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때 바닷가에서 생긴 일을 다시금 회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