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해야 하나요?
아파트 34평.
칠삭은 너무 기뻤다.
새롭게 입주한 아파트 20층에서 바라본 주변전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겨울 저녁 노을이
거실 창문에 가득 채워지는 순간
그어디에서 가져보지 못했던 황홀경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지난 겨울.
결혼해서 15년만에 처음
자가(自家)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2025년 말,
네 식구가 이삿짐을 옮기느라고 땀을 흘렸다.
한 해의 마지막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전혀 감흥이 없었다.
이사온 지 보름.
이제 어느 정도 집 안의 가구들이 자리를 잡았다.
"아 이것이 평화구나...
우리 집 행복은 이제 시작이다."
칠삭은 아내 명숙이의 어깨를 두두리고 안아주면서 "여보 수고했어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명숙이도 남편의 얼굴을 올려다 보면서 맑은 미소로 답했다,.
며칠 뒤,
칠삭은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여보.. 이제 양가 어른들 모시고 집들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 말을 듣자 영숙 얼굴에 미세한 어둠이 드리움을 감지했다.
"지금이 집들이 할 때에요?
당신 요새 집들이 초대 받은 적 있어요?"
"아니 그래도 부모님들이 우리가 집을 마련했으니까 한번은 초대받아 오고 싶지 않겠오?"
"난 못해요. 시간도 없어요. 생각해 봐요.
당신과 나 그동안 이사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어요?
그리고 이제 회사도 바빠요. 새해라서.
당신이랑 나.. 출근하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파죽음이에요. 주말에는 좀 쉬어야지요.
언제 어른들을 모셔서....식사하고 대화 나누고. 지금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그래도...그렇지...어려번 하자는 것도 아니고 단 한번인데....."
칠삭은 아내와 언쟁이 높아질까봐 말꼬리를 낮추어서 대화를 중단했다.
다음 날 아침, 칠삭은 전철을 타기 위해
집을 나서서 뛰어가고 영숙은 지하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영숙은 주차장에서 소형차를 운전해서 직장을 향해 나아갔다.
혹자는 물어볼 것이다.
왜 아내는 자가용이 있고, 칠삭 자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냐고?
칠삭은 잘 알고 있다.
두 사람이 맞벌이를 해서 아파트를 마련하느라고 얼마나 근검절약하며 노력했는지.
아내 영숙이는 체력도 그렇지만, 퇴근할 때 식사재료 등 살림살이를 위해서 마트를 다녀와야했기에 하는 수 없이 중고소형자가용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이 약간의 언쟁을 하고 난 2,3주 지난 뒤.
칠삭은 아내가 불쾌하게 생각하며 내뱉은 말을 조심스럽게 곰씹어보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 아파트 구조가 어떻게 되었는지."
거실 하나에 화장실 두개,
그리고 안 방과 작은 방 2개.
안 방에는 칠삭과 영숙이의 사랑보금자리인 침대가 가운데를 차지하고 구석에는 옷장이 벽을 등지고 있었다.
작은 방 두개는 아들 송창이와 딸 송언이가 이미 차지했다.
"와 우리 방이다."
태어나서 처음 자기방을 소유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처음이었다.
이미 14살, 12살, 솔직하게 말하면 자기방을 갖게되는 연혁을 생각했을 때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늦었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
아이들은 침대, 책상과 책꽂이, 옷걸이를 비롯해서 자기들의 소모품으로 채웠다.
송창이는 야구와 축구용품 일체,
송언이는 인형과 연예인과 관련한 물건들을 가지런히 채웠다.
거실 한 구석에는 싱크대가 '본래부터 여기는 내 자리였오!"라고 주장하듯이 턱하니 서 있고, 그 앞에는 식탁과 네 개의 의자가 서로 마주보고 세워져있었다. 싱크대 옆에는 김치 냉장고와 중형 냉장고 두개가 마치 우리 집을 지키는 수호신 처럼 당당하게 서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거실 한 구석에는 4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와 벽에 대형 TV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흠...만일 부모님께서 오신다면,
어디 앉으셔야 하는가?"
나무도 상식적인 질문 앞에
칠삭이는 갑자기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식탁 옆의 의자도 네개, 소파도 4인용. 부모님 아니 가끔 방문하게 될 손님을 위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아직 90년대 생활방식에 고착되어 있는가?"
사실 칠삭이가 어렸을 때, 어렴풋이 떠오르는 풍경이 있었다.
형이나 누나 친구들이 집에 와서 하루 묵게 되면,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했다.
"베개 하나 있으니까..가져다가 사용하렴...
식사야..뭐.수저한 세트만 더 놓으면 되지.
우리 식구가 늘 먹던 것 함께 해도 괜찮지?"
사실 이 한마디면 다들 좋아라 했다.
침대도 없이 바닥에 앉아서 밥상을 펼쳐서 식사도 하고, 까르르 까르르 서로 떠들다가 흩어져 잠자리로 들어갔다.
비록 좁은 방이었지만,
하룻밤 정도 같이 지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만일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셔서 하룻밤을 지내신다고 하면.....
우리 둘만의 안방을 내어 드릴 수도 없고,
아이들 방은 난리가 날 것이고..
그렇다고 거실에.....
아냐..그것은 절대로 안되지.....
그렇다면...뭐 다른 방법이 있는가?
만일 부모님이 '거실도 좋아!'라고 허락하신다고 해도, 아이들이 밤 중에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는 일도 조심스럽고....부모님들도...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밤이 될텐데...게다가 집으로 돌아가시면 '우리 아들네 집 거실에서 잤다.'라는 푸념은.... 아이구 상상만 해도...그리고 보니..영숙이 생각이 나보다 더 깊었네...내 생각이 너무 얕고 짧았어....그러나 저러나...."
칠삭이는 아파트 34평이 너무 좁다는 생각을 했다.
칠삭은 "혹 40평형 대 아파트는 여유가 있을까?"하며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아파트를 구입할 형편은 아니다.
사실 지난 15년간 칠삭과 영숙이는 근검절약하면서 알뜰살뜰하게 살아왔다. 그동안 아파트 청약을 여러번 신청했는데 번번히 떨어졌다. 이제 간신히 당첨되어 입주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파트 구입 자금 중 60%가 대출금이다. 이제 앞으로 약20년간 대출금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직장 은퇴할 때 즈음 이 집이 진짜 칠삭과 영숙이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입하지 못해도 40평형 아파트 구조를 검색한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한 번 비교는 해보자.. 까짓꺼....또 알아...
이 아파트에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40평형 아파트로 이사가게 될지..우리 둘이 열심히 벌면 그런 날이 오지 말란 법이 있겠어?"
칠삭은 인터넷으로 40평형 아파트를 검색하며 살펴 보았다.
"흠..40평형은 방이 네개구나..
조금 낫네...흠.....그런데 방이 너무 작구만..
설령 40평형이라고 해도
부모님이 방문하실 경우 작은 방에 모시기는 힘드데....오 현대 사회구조가..다 이렇구나."
칠삭이는 사회가 제공하는 구조에 대하여 약간의 분노와 자신의 사고 한계에 대하여 살짝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칠삭은 결혼 전에 뉴욕에 살던 친구네 집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 아무 때나 놀러와.. 자네가 오면 항상 환영이야."
칠삭은 친구의 말만 믿고 달랑 비행기 티켓을 들고 뉴욕을 방문했다.
'잠은 친구네 집에서 묵고...그리고 여행은....'
뉴욕 JFK International Airport에 비행기는 안전하게 착륙했다. 수속을 마치고 플랫폼으로 나아가니 친구가 두 팔을 벌리고 환영하며 달려왔다.
"피곤하지? 우선 집에 가서 잠을 푹 자고...
아마 시차에 적응하려면 고생을 해야 되."
친구의 8기통 자가용에 몸을 싣고 뉴욕 밤길을 달렸다.
처음 듣는 동네..훌러싱이라고 했다. 약간 낡은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있는 곳으로 들어가 주차를 했다. 칠삭은 친구가 살고 있는 작은 아파트로 들어갔다.
친구는 결혼을 일찍해서 어린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다.
친구 아내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커피를 내리고 난 다음 "저는 내일 출근해야 해서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라고 사라진다.
칠삭은 "나는 어디에서 자야하지?"라고 속으로 궁시렁궁시렁하고 있었다.
잠시 후 친구는 침낭 하나는 들고 나왔다.
"칠삭아. 너는 거실에서 침낭을 펴고 자야해.. 일단 내일 아침에 보자."
칠삭은 살짝 당황했다.
"뭐 뉴욕까지 왔는데..나를 거실 한 가운데 침낭에서 자라고 ...아니 이런 대접이 어디있나?'
당황스러움을 넘어서 불쾌함마저 가슴 깊이 후벼파고 들었다.
그래도 너무 피곤한 나머지 칠삭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뉴욕의 아침이 밝았다. 친구 아내는 출근을 했다. 아이들은 아직 자고 있었다.
"칠삭아.. 거실에서 자게 해서 놀라고 당황했지? 어쩔 수 없어. 미국에서는 집을 구할 때 한국과 달라. 32평, 45평 이런 기준이 아니야. 식구가 4명이면 4bed rooms, 식구가 두명이면. 2 bed rooms식으로 집을 구해야 해.. 그래서 우리 아파트에서는 너에게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어. 그래도 미국사람들은 거실에 신발을 신고 다녀..그러니까 거실을 우리처럼 사용할 수 없어. 우리 한국사람이니까 신발을 벗고 다니니까 거실이라도 이렇게 사용할 수 있는거야."
칠삭은 친구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부모를 비롯해서 손님이 오면
게스트 하우스(guesthouse) 또는 게스트룸(guestroom)이라는 것을 마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게스트 하우스(guesthouse) 또는 게스트룸(guestroom)이 별장형식의 의미가 아닐까?
'사실 손님을 위한 배려를 이와같은 방식으로 하는구나..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손님들에게 더 편할 수 있겠어.'라고 칠삭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나 저러나 칠삭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햇다.
'나도 사실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우리 식구 4명만 고려했지..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어.
물리적 환경 자체가 그러하니까..
과거 침대생활을 하지 않던 시대와는 다르니까.'
칠삭은 급변하는 세상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집이라는 것 아니 가족이라는 것은 부모-자식 뿐이구나.
그 외에 소위 "확대가족( Extended family)"라는 것은 이미 가족이 아닌 손님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겠네.
어느날 TV에서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를 보러 서울에 왔는데..."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시 시골로 내려가야 했다."는 보도를 접한 바 있었지..
그 때 당시에는 아들 며느리를 욕하고 비난했는데...돌이켜 보면 지금 칠삭이는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움추러들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세상의 흐름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하는 수 없이 이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가?
20년 뒤, 아파트 대출금을 다 갚게 되면, 그 때 오늘 부모님이 겪는 처지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겠는데...
칠삭은 깊은 상념에 빠져서....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독자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