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어린이집에서 권유해서 우리 둘이 애랑이의 언어인지 발달체크를 했던 기억을 끄집어 냈습니다.
저도 어슴프레 그때 기억이 솔솔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애랑이와 지금의 애랑이의 언어/인지 발달 정도에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요?"
담임선생님의 질문은 우리가 고민하는 지점과 너무 일치했습니다.
"네 우리가 지금 매일 고민하며 걱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조금 크면 달라지겠지요. 변화되겠지 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변화를 보이지 않아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서 나오는 표현은 나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글쎄요 나이만큼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요.. 학교에서는 어떠한지요?"
이 순간 당황하게 된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습니다.
이 때 특수교사 선생님께서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집에서는 애랑이가 의사소통이 원활한가봐요.
그렇지만,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학교에서의 애랑이를 살펴본 바로는 아직 5세 수준의 언어인지 발달을 보이지 않기에 오늘 부모님을 뵙자고 한 것입니다.
사실 언어.인지는 단지 말을 할 때 얼마나 많은 단어를 표현하는 수준만을 가리키지 않거든요.
같은 또래와의 상호작용, 상황에 맞는 의사표현, 자신이 무엇인가 필요할 때 욕구를 표현하는 것, 아울러 다른 사람의 의사를 잘 받아주고 이해하는 것을 통해서 친구들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요. 그런데 애랑이가 이 부분에서 또래 아이들보다 많이 지체(delayed)되는 현상이 두드러져서...애랑이의 정상적인 발달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해서 이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선생님의 긴 설명은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아내와 나는 서로 바라보았지요.
아내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잠시 아내의 눈에 눈물이 조금씩 고여가고 있었습니다.
"여보...여---보...!"
더이상 다른 말은 필요 없었습니다.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집에서 우리 애랑이는 수다쟁이에요.
왜 학교에서.. 그런 애랑이가 되었을까요? 혹 학교에서 애랑이의 기를 너무 죽인 것은 아닐까요?'
말도 안되는 억지주장을 하고 싶었지만, 금새 어리석은 일임을 우리 부부는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속에서 북받쳐오르는 슬픔을 게속해서 누르고 또 누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 부분이 걱정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이러저런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수고가 그다지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아서....그런데 학교에서 상담하러 오라는 말에 우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요. 그래도 이렇게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는 나지막한 소리로 되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에게 단 하나 밖에 없는 귀한 딸입니다.
아니 아이들이 여럿 있었어도
한 명 한명이 모두귀한 존재이겠지만.
애랑이는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 얻은 귀한 생명입니다.
잘 키우고 싶습니다."
이렇게 애절하게 표현하는 우리를 두분 선생님은 아주 차분한 표정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상담실 바깥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교실에서 뛰어나와 왁자지껄 떠들면서 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 사이로 하얗고 맑은 햇살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눈물을 보니 많이 걱정하셨던 것 같습니다.
먼저 정확한 검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전문가를 통해서 진단( diagnosis)과 사정(assessment)을 거쳐서 우리 모두가 애랑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힘을 합쳐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리하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학교교정을 가로질러 정문을 향해 걸어오는데, 마치 천정이 무너지는 것같이 우리의 어깨도 깊이 쳐져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