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이를 잘 몰라요 (10)

절망과 좌절, 부정(否定)

아내가 "이제 시작인가봐요"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에게 이같이 말했지요.

"여보 ..아이들 중에는 늦게 말이 트이는 친구들도 있어요.

우리 애랑이 너무 내성적이라서 그런거예요.

어떻게 알아여..나중에 너무 말이 많아서 우리를 귀찮게 할지...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내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었지만, 사실은 나자신을 위로하려는 말이었는지 모르지요.

높은 푸르른 하늘에 양털구름이 떼를 지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잠간 시야를 내려다보니 좌우에 늘어선 버드나무에는 축 늘어진 나뭇가지가 옅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우리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야..애랑이가 늦되는 것이겠지.. 잘 될꺼야..."

속으로 이런 말을 쉬지 않고 뇌까리면서 하루하루 지나갔습니다.


선생님이 소개해 준 소아정신과를 찾아갔습니다.

애랑이는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서 이러저러한 검사를 했습니다.

우리도 그동안 애랑이를 양육하면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상담을 했습니다.


비록 소아정신과이지만, 태어나서 처음 "정신과" 라는 병원을 방문하는 것도 낯섦을 넘어서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만일 병원에서 애랑이 검사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면 어떻게 하지?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면 다른 병원을 또 찾아가야 하나?

아니 그러다가 다른 병원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말해주면 또 어떻게 하지?

그 다음에 또 다른 병원을....


아니 왜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나의 머리에 가득차 있는 것일까?

밝고 즐거운 생각으로 바꿀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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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재촉하기도 하고 책망하기도 했습니다.

단지 검사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불안한 마음은 애랑이가 태어나기 전에 가졌던 불안함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그때는 기대가 가득한 불안함이라면

지금은 염려로 채워진 불안함이었습니다.


하루 하루가 어두운 밤 같았습니다.

아내의 말수도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저도 상념만 가득할 뿐, 무엇이라고 해야 할 말을 준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암 진단 결과를 문서로 받은 뒤, 환자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심정과 비슷했습니다.

그런데...지금... 이게 남의 일이 아니잖아.

바로 내 일이고, 우리 일이 잖아.


그 날이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소아정신과 선생님 앞에 다소곳이 두손을 모은 상태로 앉아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의 얼굴에서 불안함을 읽은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요. 태연하려고 했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능지수가 경계선(boundary) 근처로 나았습니다.

게다가 언어발달이 경계선 지능에 해당하는 친구보다 더 낮게 나왔습니다.

가능하다면.. ..언어치료, 인지적 학습지도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금 일찍 오셨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지금부터 함께 노력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게지요"


"경계선이라구"

우리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용어를 접하면서 마치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계선이라 함은.... 무슨 뜻인지요?"


병원을 나오면서 우리 둘은 다시 긴 침묵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길을 걸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눈은 보도블록이 이어지는 경계선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또 끊어질 듯 이어져 길을 만들어가는....

그 위로 우리의 발자국은 흔적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뒤를 돌 이유도 없이... 우리 둘은...


순간..나는 아내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여보 내가 애랑이를 잘 모르고 키웠나봐.

내가 애랑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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