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이를 잘 몰라요(마지막)

다시 시작되는 기다림

他人

아내가 담담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나는 움찔했습니다.

사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엑게 다가온 애랑인데.

어디에서 부터 무엇이 잘 못 된 것일까?'

나는 미칠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도 맑고 높은 하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당신만 이렇게 고고한 척 합니까?

적어도 이 순간 만큼은 내 아픈 마음과 같은 심정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속으로 절규하며 멈출 수 없는 눈물이 홍수되어 온 몸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애랑이 손을 잡고 어깨를 펴서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깡총깡총 뛰고 있는 애랑이의 표정은 우리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애랑이의 표정은 엄마, 아빠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하면서도 '어떻든 애랑이가 우리 자신이 아니니까....'하며 자위하고 있었지요.


아내는 선생님께서 소개해 준 재활치료 기관 리스트를 살펴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전화하면서 가야할 곳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있었지요.

"내가 함께 살아온 내 아내가 저 사람이 맞는가?"

아내의 새로운 모습에 경이로움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내 아이가 조금 약하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그 약함이 내 안에 잘못된 추측이기를 바랬고, 사실이 아니기를 더 강하게 바랬지요.

만일 사실로 판명될 경우에 나는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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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 지금.

아내는 강한 여성이요 엄마였습니다.

내가 애랑이를 바라보면서 아버지로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을 때,

아내는 자신의 분신(分身)으로 애랑이를 품고 있었습니다.

즉 아내는 타인(他人)이 아닌 자기자신(自己自身)으로

애랑이를 인정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내 아내도 잘 몰랐습니다.

동시에 내 아이도 잘 몰랐습니다.

결국 나는 나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기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아내와 애랑이는 나의 마음 바깥에 존재했고,

애랑이는 아내의 마음 내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내 아이를 잘 몰랐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왜 아내와 애링이가 내 안에서 살아있지 않았을까?"


나는 아내가 검색한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여보 어떻게 좋은 곳이 있어요?"

나의 질문에 아내는 심심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더 알아봐야겠어요."


"여보 당신 말대로 이제 다시 시작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애랑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이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애랑이가 태어날 때 기대한 것 처럼

우리는 새로운 기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정의 행복 그 중심에

애랑이의 행복이 있지요.

그곳에 우리 부부의 행복도 함깨 있어요.


앞으로 애랑이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할까요?

이제 부터 시작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우리 아이에 대해 잘 몰랐다는 사실이지요,.

출발은 이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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