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박자가 일정하지 않고 엇박으로 나오면서 박자를 가지고 노는 때가 많기 때문에 호응해 준다며 박수를 쳐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은 노래와 상관없는 2002 월드컵에서도 짝짝~짝 짝짝! 하며 박수로 대동 단결하기를 참으로 좋아했는데 박수를 못 치게 한다는 건 내 두 손에게 참 못할 짓이다.
또 재즈를 부르는 사람은 정해진 음과 상관없이 본인의 흥에 따라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내어 두비두바~~~ 등 뜻도 없는 스캣을 무한 창조해 내는데 같이 흥얼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것 참 난감하기가 짝이 없다. 조용히 듣고 있는 사람마저 각자의 흥에 따라 다 같이 다다다다~ 스캣을 하게 되면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을 것이다. 그냥 조용히 듣기만 해야 한다. 귀만 쫑긋 열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떼창의 민족이고 나는 그중 하나인데 가만히 듣고만 있기엔 내 입이 너무 심심하다. 그래서 멀리 하게 되었고 결국 재즈는 먹는 건가요? 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런 나를 몰라보고 나에게 참으로 난감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재즈 그 심오한 노래는 몰라요~ 하는 나에게 이런 비주류를 택한 지인이 어느 날, 자신이 프로듀싱한 노래가 나왔다며 CD를 내게 선물해 준 것이었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라 그 당시는 CD로 노래를 들었었다.^^) 평소 난해한 음악을 하는 것 같길래 우선은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을 먼저 하고 기반도 닦고 이름도 알린 후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슬쩍 힌트를 주긴 했는데 기어코 자신이 하고 싶어 하던 음악으로 음반을 낸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어떠냐고 물어올 것이기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1번부터 12번 트랙까지 얼른 들어보았다.
나는 듣는 귀가 발달했다. 어릴 적 중이염을 앓고 결혼 후에야 중이염 수술을 받았는데 압력에 취약해져 버린 나의 귀는 대관령보다 낮은 지대에 있어도 귀가 먹먹해져 오는 것이 다소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베토벤도 아니면서 무조건 음악에 나를 노출시켜서 그런가 점점 더 듣는 귀는 발달하는 느낌이다. 더불어 촉도 좋다고 해야 하나.
예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에 전영록을 제외한 다른 심사위원들이 쓰디쓴 혹평을 퍼부을 때도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야~!" 거의 세계로 뻗어나갈 장르인데~! 했었고, 윤도현이 가요톱텐 무대에 서서 "아아아~~ 타잔"을 부를 때 듣자마자 "와~~ 흥미롭다. 뜨겠는걸?" 했더니 역시나 떴었고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명들이 노래하는 것을 듣자마자 "이번엔~ 쟈가 1등이네~!" 하면 무조건 1등이 되었었다. 또 은근 찍는 것도 잘해서 복면가왕에 나오는 가수들은 복면을 쓰고 나오지 않은 것 마냥 목소리만으로 그들의 정체를 하나같이 맞추어댔으니 같이 보고 있던 신랑마저 놀란 적이 있다. 어찌 목소리만 듣고 다 아느냐고... 그건 말이야... 자기가 좀 둔한 거야... 무튼 노래 쪽으로는 약간 귀가 트였다고 자부하는 나는 CD의 빤닥빤닥한 비닐포장을 북북 찢어 얼른 들어보았는데...
오 마 이 갓~!!!
망했다. 이 음반.
길을 가다 한 번만 들어봐 달라고 돈을 주고 통사정을 해도 돈만 받지 안 들을 음반이었던 것이다. 이를 어쩌나. 지인은 이제나 저제나 평이 언제 오려나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을 것인데 이 평을 어떻게 해줘야 하나. 배려에 죽고 배려에 사는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 나는 애써 포장에 포장을 더하여 말을 만들었다.
"와... 가수 음색이 굉장히 독특해요. 멜로디에서는 뭔가 고독이 느껴지고 슬픔이 묻어 나와요. 흔하게 접하지 못했던 곡이에요~"
애썼다. 정말.
이제 곧 망할 거니 각오 단단히 하고 있으라고 왜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이미 CD가 나온 후였다. 한 박스인지 두 박스인지 아니 그 이상일지 모를 음반을 제작 완료한 사람을 두고 혹평을 해서 뭐가 달라질 것인가. 도로 무른다고 물러지는 것도 아닐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판매율이 형편없는 걸 보면 스스로가 깨달을 텐데 내가 앞장서 쓴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음반 발매 전 그 지인의 지인에게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매우 고민하더라고 한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주류에 편승하여 뜰 것인가.
뜨지 않고 비주류에서 나만의 음악을 할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에 뜨지 않고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우선 경제적인 것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든 말든 내가 창작해 낸 그것을 자기만족만으로 세상에 꺼내려면 그것이 얼마를 벌어다 줄 것이다라는 건 일체 기대를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데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끔 "전 제가 하고픈 음악을 할 거예요." 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영광의 1등을 차지하여도 추후 방송에 잘 안 보이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때가 있다. 자기만의 색이 너무 강해서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장르를 한다거나 소위 개척 정신이 강하면 그렇다. 그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