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널 몰라
프로필 사진에 자신의 당당한 얼굴을 거침없이 넣은 모습에서 자신감이 느껴진다.
어떤 사람이 나를 기꺼이 구독씩이나 누른 걸까? 우선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 많은 훌륭하신 글벗들 중 고맙게도 미천한 나를 선택하여 좋아요 뿐 아니라 구독씩이나 눌러 주셨으니 말이다. 구독만 낼름 받아먹고 입을 쓰윽 닦을 순 없다. 보답을 가야지. 프사를 눌러 그의 글로 간다.
휙휙 글들을 넘겨본다. 한 개의 글로 그의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으므로 완벽한 책이 나오기 전 경악할 만한 큰 실수는 없는지를 슈욱 체크하는 편집자가 된 양, 속독도 못하면서 괜히 속독하는 척 휙휙 글들을 빠르게 넘겨가며 그의 생각, 그의 사고방식, 그의 깨달음, 그의 감정들을 훑어본다.
불가결이란 단어가 보인다. 알고는 있지만 잘 쓰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그래 어느 정도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확신의 퍼센티지가 조금씩 상승기류를 탄다.
어떤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대략 파악하였고 그럼 이제 다음 순서. 그가 누른 구독자 명단을 눌러본다.
자신은 그런 글을 쓰는데 그에 반해 그 자신은 어떤 글을 쓰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눌렀다가...
아...
실망스럽다.
거의 모든 사람들을 구독했다. 띠로리... (그 해당 플랫폼의 출석부를 보는 듯하다...)
이건 그러니까 구독한 그 사람들의 글을 모두 보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그 반대다. 당신이 글을 쓸 때마다 내가 가서 읽겠소 라는 의미라기보다 내가 글을 쓸 때마다 와서 보시오라는 의미이다. 물론 속독을 하는 사람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행간도 스토리가 되고 호흡도 깊은 의미가 있는 "시"의 장르에서 속독은, 두 단어를 놓고 어떤 단어를 고를지를 무수히 고뇌하며 힘들게 시를 낳은 작가에게는 참으로 결례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창작한 소설이든, 전문 분야를 깊게 연구하여 정보와 의견을 피력한 글이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깨닫게 된 것을 부끄럽지만 끄집어내어 쓴 에세이든,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겠느냐마는. 솔직히 나는 적어도 그와 같은 상황의 나의 입장이라면 구독한 그 많은 사람들의 모든 글을 읽어 본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혹시 운 좋게도(?) 지금 당장 업(業)이 없어 24시간을 자유롭게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라든가, 오히려 출판사의 편집자라는 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 많은 구독자의 글을 다 읽을 수 있으리라고 믿기엔 고개가 갸우뚱해지고 괜히 애먼 정수리만 긁적긁적하게 된다.
구독이 들어와서 감사한 마음에 그분의 글을 들어가 보지만 이런 상황임을 알면 난 맞구독을 누르지 않는다. 너도 구독을 눌렀으니 나도 구독을 눌러주겠다까지는 최소 그 정도의 마음까지는 괜찮다고 본다. 그렇지만 내가 글을 썼을 때 상대의 그 많은 구독자 중의 하나일 뿐인 나에게 친히 오셔서 나의 글을 읽어주실 확률은 매우 저조하다. 나는 매번 가서 읽겠지만. 그렇다면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그러므로 불공평을 원천 차단한다는 의미이다. 너무 계산적인가...
구독의 시대.
유튜브도, 글 쓰는 플랫폼도, 심지어 배달의 민족에도 찜이라는 버튼이 생긴 요즘 시대.
각자 구독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누를지 말지 알아서들 결정을 하겠지만 최소 글을 쓰고 읽는 플랫폼에서만큼은 구독 남발은 좀 아니지 않나 싶은 마음이 든다.
예전 황희 정승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래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 하며 의견이 다른 두 사람에게 모두 다 옳다고 말했더니 그 모습을 지켜본 제3의 인물이 황희 정승에게 궁금해서 질문하였다.
"두 사람의 의견이 필시 정반대인데 어찌하여 이 사람도 옳고 저 사람도 옳은 겁니까?"
하였더니 황희 정승 曰
"그래 맞다. 니 말도 옳다~"
라고 했다는. (웃음 이모티콘을 넣고 싶다...)
예쁜 애 옆에 예쁜 애마냥 니 글도 좋고 바로 옆 니 글도 좋고 난 다 좋다 그런 의미라면 괜찮은 걸까?
노래만 부르려고 입만 열면 자동으로 거짓말이 나와... 전부 가수고 글만 쓰면 모두 작가 같은 뛰어난 사람이 넘쳐나는 시대에 사는 요즘은, 찾지 않고 좋아해 주지 않으면 소외감으로 또는 의기소침해져서 노래를 그만두고 글을 그만 쓰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길까 봐 격려 차원으로 구독, 좋아요를 누르는 것일까.
어떤 게 맞을까.
희망과 꿈을 고이 예쁘게 담고 포장하여 마음을 전달해 주기 위한 좋아요, 구독?
희망과 꿈은 각자가 알아서 할 일. 철저한 개인 기준에 따른 좋아요, 구독?
어렵다. 정말.
인생 어려워.
나만 복잡한가. ㅎㅎㅎ
아... 괜한 글을 써서 "아~ 그러세요? 알았어요~ 까탈스러운 나의 기준으로 너에게만은 구독을 누르지 않을게~"를 시전 하신다면...
아이고... 죄송합니다... ㅜ.ㅜ
아... 비굴한 나의 모습... 참으로 인간적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