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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Nov 28. 2022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돼요

열심히 살아온 나, 숨 좀 돌리자.



해방이다~ pixabay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대학생 알바나 뜨내기 알바들보다 상대적으로 길었던 나의 근무기간으로 인해 사장님은 내게 많은 권한을 주셨다. 거의 매니저급으로 일을 했다. 새로운 알바가 들어오면 일을 가르치고 모든 손님들의 응대와 주문은 물론이며 퇴근 전 하루 매출 정산까지 모두 내 일이었다. 때때로 가게의 이런저런 필요한 물품이라던가 개선해야 할 점이라던가 하는 것들도 사장님께 서슴지 않고 제안을 하고 의견을 나누는 나는 무늬만 알바인 매니저였다.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을 뽑아 같이 일하게 되었는데 좀 늦깎이 대학생이려니 하는 생각이 드는 한 스물대여섯 정도 보이는 여자였다. 난 대학생이냐고 물었고 그녀는 까르르 웃으며 "어머~! 감사합니다." 하고 환하게 웃는데 웃음소리도 하이톤이고 목소리는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성우의 매력적인 목소리처럼 카랑카랑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은 애가 셋이나 되는 30대 중반 주부라고 했다. 체구는 중학교 1학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자그마한 키와 마른 몸이었는데 키가 작은 나조차도 그녀가 참 작게 느껴지는 가녀린 그녀였다.



목소리와 웃음소리에 자신감이 가득이다 했더니 역시 이 여자분은 매사에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굽히지 않고 항상 소신 있게 말을 했다. 매우 당당한 자세로 말이다. 보통 내 나이 정도의 사람은 예의로 포장한 굽신거림이 있게 마련인데 그런 게 없었다. 사장님에게도 '넌 사장이고 난 직원이야.'라는, 그러니까 '당신은 돈을 주고 날 고용한 사람일 뿐이고, 난 그 돈을 받고 일하러 들어온 사람이야. 우린 단순한 계약관계이지~!'라는 어쩌면 한없이 당연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갖지 못했던 마인드를 가진 그녀였다.



한 번은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펑크를 낸 적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근무날에 결근을 해야 한다고 사장님께 부탁이 아닌 통보를 한 것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사고방식을 가진 나는 그 당시 일하는 자는 그저 "을"이라는 마음에 사장님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었었던 상황이었다. 갑작스러운 출근도 YES, 갑작스러운 교체 근무도 YES, 갑작스러운 연장근무도 YES... 등... 말이 아르바이트생이지 거의 노예나 다름없었던 상황이었는데 그녀에게도 그런 상황이 닥치게 된 것이었다. 당찬 그녀는 나와 같은 상황이 닥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제 곧 그런 상황을 맞닥뜨릴 터인데 하며 내심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지내던 중.


"미영 씨. 혹시 내일 근무 하루 더 가능하신가요?"


라고 사장님이 그녀에게 물어보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녀의 대답은?


"음~~ 사장님? 내일은 제 스케줄이 이미 다 정해져 있어서 말이죠. 그런데 일을 부탁하실 때는 최소 일주일 전에는 말씀을 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도 제 개인 사생활이 있는 거잖아요?"


하고 당당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얘기하는 게 아닌가.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틀리지 않은 그녀의 말에 수긍을 하며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그녀가 참 존경스러웠다.



'맞아... 그렇지. 미리 얘기해 주는 게 맞지. 어쩜 저리 똑 부러질까. 멋진데?'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또래 사람들은 책임감이 많다. 많은 정도가 병적이다. 알바로 들어왔는데 거의 사장 마인드로 일을 한다. 내 가게다 라는 생각으로 없는 일도 찾아내서 한다. 나도 그런 주인의식으로 무장한 사람 중의 하나였는데 어느 날 그녀가 넌지시 나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언니~ 우리는 알바예요. 알바는 딱 알바가 할 일만 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이 인정이 있지. 어찌 그러냐 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어느 날 비번인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언니~ 저 서점 왔는데~ 책 둘러보다가 딱 언니 생각이 나는 거 있죠? 사진 하나 보내드려요~^^"


하더니 곧이어 나에게 책 표지 하나가 전송이 되어 왔다.




이곳 브런치를 몰랐을 때 알게 된 책. 한참 후에나 브런치에서 태어난 책임을 알게 된~^^





푸하하하하
책 제목을 보고는 빵 터져서 한참을 웃고 말았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니!! 나의 맞춤옷인것 같은 책 제목에 허를 찔린 듯 처음엔 큰 소리로 웃었다가 어느 새 웃음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난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하고... 그 생각 뒤로 그녀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또 어느 날은 미니스커트에 까만 스타킹을 신고 딱 달라붙은 상의를 입고 출근을 한 적이 있었는데 퇴근 후에 어디 약속이 있느냐 물었더니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 날이라고 했다. 아... 아이돌??? 알고 보니 완전 덕후였더라는 ㅎㅎ "언니한테만 알려주는 거예요." 하며 자신이 얼마나 그 아이돌을 좋아하는지 이야기하는 얼굴은 행복 그 자체였다. 듣고 있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으니.



그런 생각이 같이 들었다. 이렇게 뭔가 흠뻑 빠져 사는 것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 매번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 열정적으로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노는 이런 삶.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었는데 하는 생각.


그녀는 1년 정도 일을 하고 그곳을 떠났다. 또 다른 일을 도전하고 얼마 후 연락이 왔다.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오늘은, 나보다 어리지만 참 배울 점이 많았던 그녀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녀의 영향으로 나도 요새는 좀 당당해졌다. 말끝을 흐리는 내 말투가 항상 스스로 못마땅했는데 "~ 합니까?", "~합니다." 하고 당당히 말하는 버릇을 들였다.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내가 참자라는 평화주의자였었는데 요새는 참지 않는다. 이제 나는 무례한 요구나 터무니없는 나에 대한 비판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들어오는 말에는 경적을 울려 나를 보호한다.
앞으로도 나는 나를 보호할 것이다. ^^




참~! 그녀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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