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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Dec 27. 2022

그녀는 왜 엉금엉금 기어들어갔을까

H야~ 잘 살고 있누?

아이가 셋이나 되는 내 친구 H와 함께 밥을 먹으러 식당엘 가면

정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든 시간이 시작된다.

그때 아이들 나이는 제일 큰 애가 6살이고 그다음은 4살, 막둥이 2살이었고 우리 집 아이들은 첫째, 둘째가 그 친구네 아이들과 동갑이었으니 6살, 4살. 꼬꼬마 다섯 명과 함께 하는 나는 마치 도깨비 시장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다.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다.


그 친구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분명 대화를 하려고 만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도 뻥긋할 수가 없다.

한 놈은 열심히 먹는 듯하다가 포크를 쨍그랑 떨어뜨리고, 한 놈은 뭐가 그리 맘에 안 드는지 칭얼 칭얼 엄마에게 이러쿵저러쿵 보채고, 또 한 놈은 배고프다고 젖 달라며 빼액 울어 젖히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는 것이다.


차라리 집에서 배달을 시켜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끼니를 해결하는 편이 훨씬 나은데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친구도 나도 콧구멍에 바람이나 좀 넣어 주자며 식당을 방문한 우리였다.



삼둥이의 식사시간. 출처. 웅키의 daily diary ♬ 블로그




잠시도 순탄할 리 없는 전쟁 같은 식사가 드디어 끝이 났다.

식사도 끝나고 나의 혼도 나갈 것 같다.

밥을 먹으러 온 건데 왜 이리 식은땀이 나는지 알 수가 있을 것도 없을 것도 같다. 먹는 게 무슨 일 축에나 든다고 한숨이 비집고 나와 나지막이 내쉬고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가...

우리가 먹었던 식탁 밑으로 거의 전쟁 폐허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우리가 어떤 메뉴를 주문했고 뭘 먹었는지, 그중 어떤 게 좀 덜 맛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온갖 음식물들이 죄다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우리 집 애들은 집에서 챙겨간 턱받이 덕분에 흐른 음식물이 턱받이에만 담겨 있어서 다행히 그것만 싹 처리하면 될 일이었지만, 그 친구네 아이들은 자유분방의 극치를 보이는 터라 오만데 다 떨어진 음식물을 보니 나부터도 자연스레 인상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 갑자기 냅킨을 몇 장 뽑아다가 식탁 아래로 엉금엉금 들어간다.


"야~ 뭐 해?"

"응~ 이거 좀 닦고 가야지"


"응??? 그걸 니가 왜 치워?"

"으응... 너무 어질러놔서 말야...^^;;"


"무슨 소리야. 애들이 먹다가 흘릴 수도 있는 거지.

 여기 직원들은 그런 거 치우는 값도 월급에 포함된 거야."


"으응... 그래두... ^^;;"


.

.

.


지금 생각해 보면 말 같지도 않은 이상한 소리 지껄인 내 입을 화악 꿰매어버려야 할 대사를 하고야 만 것을 깨닫는다.

어찌 그리 못 된 말을 지껄였을꼬...

내 어처구니없는 대사를 오며 가며 들은 식당 직원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소올직히 말하면

내가 한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요식업을 하는 사람들의 일이란 당연히 손님 접대만이 아니라 홀 청결도 포함이니 더러워진 홀 청소는 직원의 해당 업무가 맞긴 하다. 한데 식당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를 동반한 손님들마다 모두 식탁 밑과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든다면 나라도 노키즈존 식당을 운영하고 일하고픈 마음이 들 거란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든

그런 오만하고 자만 가득한 대사는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당연한 게 어디 있으며 사람이라면 무릇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상황에서 미안함을 가져야 하는 게 맞는 것인데 하며 6년 전의 나를 매우 꾸짖으며 앞으로는 미안함, 고마움을 자주 느끼고 실행하는 삶을 사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가끔 다소 황당한 기사를 접하게 된다.

음식점에서 바로 옆 테이블 손님들이 식사 중인데도 불구하고 화장실도 안 가고 앉은 자리에서 아기 기저귀를 갈아서 불쾌했다는 이야기,

아이가 다급하게 쉬야가 마렵다 한다고 급한 김에 종이컵에 쉬야를 하게 하고 그 컵을 식탁 위에 그대~~ 로 올려놓고 나갔다는 이야기...



개한테 한 번 물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조그마한 푸들(사실 푸들이 더 꼬장꼬장할 때가 있긴 하다만) 강아지만 보아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설 때가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은 가게 또는 식당을 방문할 때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이 자신을 보고 놀라거나 인상 쓰거나 뒷걸음질 치지 않도록,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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