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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Dec 31. 2022

곧이곧대로 믿지 마세요.

말의 이면을 생각하세요...

야아~ 야아

다~~ 필요 없다아~~

니들만 잘 살면 된다아~~


하신 어머님의 그 말씀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저는 쓸데없는 쪽으로 기억력이 비상하여서

정말 저 대사는 정확히 기억합니다.

기억력이 좋다기보다 제게 유리한 대사를 좀 더 잘 기억하는 편이죠.


어느 날...

난데없이 화를 내시고는

다시는 보지 말자 하십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소리도 지르십니다.

아...

어른이란... 원래 인자하고 온화하고 푸근한 그런 마음씨를 가지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무슨 일이신지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이렇게 지나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심장은 콩닥콩닥 벌렁벌렁

신생아도 아닌 나의 심장박동은 1분에 120번을 요동치지만

기억이 가물한 라마즈호흡을 겨우 떠올리며 숨을 가다듬고

전화를 걸어봅니다.


재빨리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신호가 한두 번 가더니


어머님은 어디 가시고 목소리 상냥한 그녀가 말을 합니다.


"지금은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다음에 다시 걸어주십시오..."


1시간 정도 흐르고 다시 걸어 봅니다.

또 목소리 예쁜 그녀가 고객의 사정을 대신 설명해 줍니다.


흐음... 내가 괘씸하셔서 전화를 꺼두셨나...

그다음 날 다시 걸어봅니다.

하아~~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듣고 싶은데 또 상냥한 목소리 그녀는 고객이 바쁜데 왜 자꾸 전화질이냐고 다음에 다시 걸으랍니다.


아직 꺼두신 전화를 안 켜두신 건가...


며칠이 지나고 전화를 하여도 나오라는, 들어야 할 목소리는 안 나오고 고운 목소리 그녀만 나옵니다.


네 목소리 고운 거 알아... 근데 이제 난... 너의 목소리가 듣기 싫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나... 봅니다.

대뜸 남편한테 컴퓨터 보안인증서 만료가 됐다시면서 어찌하는 거냐 와서 해달라시며 전화가 왔답니다! 연락이 꽤 오래 안 되어도 걱정은 전혀 안 하던 남편이 나에게 늘 하던 말.


"필요한 일 있으시면 먼저 전화하실 거야."


제 전화만 안 받으신 게 아니라 남편 전화도 같이 안 받으셨거든요.

이제 화가 풀리셨나...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으로 느껴야 할지 아닐지 마음을 푹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남편이 혼자 어머님댁에 갔다 와서는


"원인이 자기였네~"


라고 합니다.

마치 자기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듯이?


허얼...

내가 뭘...?


추석 때 올건지 말건지 어쩔 건지 전화를 안 드려서 그런 거라고 했다십니다.

시댁의 문화는 조금 독특해서 추석이나 설 명절을 딱히 챙기지 않아 왔었습니다.

결혼식 때 친정 엄마는 한복을 입고 입장할 걸 아시면서도

어머님께서는 굳이 꼭 한복 입어야 하냐시면서... 양장 입으면 안 되느냐고 그런 건 다 허례허식이라고 하셨던 분이라 곧이곧대로 믿은 것이지요...


하지만 아버님들과 달리 양가 어머님들은 화촉점화를 두 분이 나란히 하는 순서가 있으니 한 분은 양장, 한 분은 한복이면 조금 밸런스가 안 맞을 것 같다고 양해를 드리고 다행히 두 분 다 한복을 입으시긴 하셨습니다.


그런 분이셨으니 명절 무슨 필요냐 괜히 왔다 갔다 피곤하다~~ 하셔서 그런 줄로만 철석같이 믿어왔는데...


어쨌든


쓰읍...

보자 보자...

추석이면 9월...... ㅠ.ㅠ

밤잠도 설쳐가며 돈 번다고 몸을 혹사시키던 그 시기입니다...

에효...


귓가에 그 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져옵니다.



야아~ 야아

다~~ 필요 없다아~~

니들만 잘 살면 된다아~~


된다아~~

된다아~~~


네... 그것은 다 거짓말이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네네... 물론 저도 잘 한 건 없습니다만...

제가 콜포비아인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가족들은 이제 모두 적응이 된 상황입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그 말을 밀고 나가는 저입니다.

친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참 잘 하는데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둘째인 저는

어찌 그렇게 전화를 할 수 있는 것인언니가 참 대단해 보이기만 할 뿐입니다.


아... 어쩌다 걸려 온 친구들과의 전화는 한 시간씩 수다를 떠니 콜포비아는 아닌 것 같다고요?

네네... 맞습니다. 저는 선택적 콜포비아입니다. ㅡ.ㅡ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으면 말문이 막히고

어떤 의중으로 물어보시는지를 모르니 임기응변이 약한 저는 답할 때마다 머뭇거리게 되고

평소 성향이 저와 무~~ 척이나 다르신지라 대화를 할 때마다 턱턱 막히는 대화의 벽은 정말 너무도 답답하여 몸이 오그라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다 하필 그때는 도대체 하루가 어찌 지나는지도 모르게 바빠서 잠도 거르며 살았으니 당연히 전화드릴 생각도 못한 것이지요.


네... 제가 바보입니다.


니들만 잘 살면 된다

라는 말을 믿은 제가 바보입니다.


하지만...

보통은 서운하다...

라고 하시지...

며느리의 번호를 차단하실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저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습니다.

나만 이상해...?


어찌어찌 어머님 기분을 풀어드리고

"호호호 마음 푸셔요~~"

한다고 쳐봅시다.

그러고 나면 선택적 콜포비아인 저는 또 이다음에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만 백만 번을 하면서

전화를 또 안 드릴 게 뻔한데 이렇게 풀면 또 무엇 하나 싶은 마음도 드는 것입니다.



저는 아마도 화내시는 어머님의 얼굴을 가만히 보며

그저 앉아 있을 수밖에 없을걸요...




소리 지르고 화내는 건 무서워... 사진출처. 평행우주의 아로마 마리아 블로그




이제 곧 새해가 다가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전화를 드려야 하는데

전화를...

전화를...

전화를 들기가 겁이 납니다...

ㅠ.ㅠ

추석에 설까지...

이렇게 마이너스 포인트 마일리지는 자꾸만 누적이 되네요...

언제쯤 0 으로 갈 수 있을까요...




https://youtu.be/QT-ECyXduuQ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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