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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Dec 04. 2022

무례한 상황에서 나를 지켜내기

더 이상의 상처는 NO!

스무 살이 갓 넘고 용돈도 벌 겸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요량으로 갤O 이라는 여론조사 기관에서 전화 설문을 해 본 적이 있다. 슈퍼바이저라고 불리는 관리자가 모든 조사원을 관리하며 이런저런 업무에 대한 지시를 내리는 구조였는데 슈퍼바이저는 연차가 꽤 되었는지 아르바이트생을 대하는 태도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대하듯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 그녀는 서른 가까이 되어 보였고 아르바이트생들은 거의 20대 초반이 대다수여서 나이로 따지면 하대를 하는 게 큰 문제는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반말로 인해 어투는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그 상황을 슬쩍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말투는 이미 도를 넘고 있음이 너무도 확연히 보였다. 꾸중(?)을 듣는 당사자는 분명 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듣고 있기가 거슬릴 정도였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구 아까 미리 얘기했잖아. 처음에 설명 못 들었어요? 안 듣고 뭐했지?"

이건 존댓말인지 반말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이상한 외계어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조사원에게 저리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계속 나는 기분이 매우 불쾌해져만 갔는데 점점 다가오는 내 차례. 역시나 다를 바 없이 나에게도 반말이다.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요렇게 해야 . 알겠니?"

"......"

난 대답을 하지 않고 슈퍼바이저의 얼굴을 쳐다본다.

대답을 하지 않는 나를 이상히 여긴 슈퍼바이저도 내 얼굴을 쳐다보며 잠시 정적이 흐른다.

난 살짝 미소를 띠며 말을 했다.

"혹시~ 저 아세요?"

"어??"

알 리가 없다. 분명히 우린 오늘 초면이었으므로.

"아~ 아까부터 계속 저한테 반말하시길래 절 아시는 줄 알구요~^^"

하고 자료를 들고 뒤로 돌아서 내 자리로 돌아오는데 아주 속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그 슈퍼바이저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너무나도 잘 쓰는 관리자가 되었다는 풍문이 ㅎㅎ


난 사실 말을 그닥 잘하지 못한다. 글도 그리 썩 잘 쓰지는 못하지만 둘 중에 고르라면 차라리 글이 낫다. 글은 시간을 다투지 않는다. 연재하는 작가가 아니고서야 일반인들의 글은 언제 결론을 내고 종결을 짓든 상관이 없다. 그래서 오래 생각해서 천천히 글을 쓰는 걸 더 선호한다. 하지만 우리는 글보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살아간다. 사람과의 관계도 말이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말을 잘 할 수 있게 되는 책들을 간간이 읽고 있는데 아래 내용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 발췌를 해 보았다.
 

리프레이밍으로 질문 던지기



리프레이밍(reframing)은 무례한 상황에서 나를 강력하게 수비해 내는 기술이다. 부정적인 말에 담긴 어폐를 찾아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이를테면 "물이 반밖에 안 찼네"를 "물이 반이나 찼네"로 바꾸는 식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들 수 있다.





영화 <기생충>으로 오스카 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뉴욕의 문화 평론지 <벌처>의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영화가 큰 영향력을 발휘했음에도 오스카상 후보에는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봉 감독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조금 이상하긴 해도 별일은 아닌 것 같다. 오스카는 국제 영화 축제가 아니지 않나. 지역 축제일뿐이다."

이 대답은 미국 언론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자신들의 영화제를 '지역 축제'로 축소해버린 봉 감독의 리프레이밍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이렇게 리프레이밍을 잘 활용하면, 무례한 말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 우아하게 반격할 수 있다. 특히 리프레이밍과 물음표가 만나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무례한 말을 한 상대가 다시 대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말에 담긴 문제점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리프레이밍 질문은 대체로 상대가 부정하는 것을 긍정하거나, 상대가 긍정하는 것을 부정하는 형태를 띤다. 한때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직장인의 경험담에서도 리프레이밍 질문의 예시를 찾을 수 있다. 가정 폭력으로 처벌을 받은 한 남편의 기사가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화두가 됐다. 한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마누라 한 대 때린 거 가지고 처벌이 너무 심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가 이렇게 물음표를 달았다.

"마누라 몇 대 정도는 때리면서 살고 싶으신가 봐요?"

상대의 긍정을 부정하는 이 강력한 리프레이밍 질문 덕에 그의 말에 담긴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어 상대의 말을 들여다보면, 결국 말은 평소의 생각이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불편한 말이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모를 때, 리프레이밍은 말의 모순을 꼬집는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상대의 무의식에 숨어 있는 생각의 문제점을 알리고 싶을 때, 리프레이밍 질문이 매우 효과적이다.

긍정적인 리프레이밍을 상대가 부정한다면, 조금 더 직접적인 질문으로 그 말의 의도를 물어보자. 이때 '설마'라는 말을 덧붙여 주면, 상대에게 마지막 변명의 여지를 주는 효과가 생긴다. 설마 그렇게 심한 말을 할 리가 있겠느냐는 뉘앙스로 진의를 물으며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다. ...출처 <할 말은 합니다> 희렌 최  31~35p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의별 희한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된다. 꼭 예의 바른 사람과만 알고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때 무례한 사람으로부터 나는 나를 지켜내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초등, 중등, 고등만 해도 1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무도 그 누구에게도 무례한 말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온 우주의 중심은 개개인의 입장에서 바로 "나" 자신일 것이고 그런 "나"는 "나" 스스로가 지켜내야 하는 것이므로 이제라도 배워 두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위와 같은 방법도 통용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이렇게 말을 끝맺는다.



이렇게까지 기회를 주었는데도 계속 공격적인 말을 이어간다면,
그때부터는 물음표가 아닌 '타임'이나 '퇴장' 카드가 필요하다.
운동 경기에서도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는 선수에게는 레드카드를 내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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