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Jan 11. 2023

잠긴 문 여는 법을 알려줘, 말아

일취월장하는 막둥이

"엄마~ 나 인제 되게 잘하지이~~"


"응??

 뭘 잘해?"


그러더니


"이리 와봐~~"



출처. 포푸리 블로그. 사진은 면봉이고 끝이 뾰족한 이쑤시개는 조금 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나를 화장실 문 앞에 세워 놓고선

이쑤시개 하나를 척~! 들고 문고리에 슉 넣어 휘적휘적.

곧이어 잠긴 문이 딸깍! 열린다.


"이거 봐~

 나 예전엔 되게 오래 걸렸잖아~

 이젠 되게 잘 열지??"


그러더니 배배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는 얼른 들어가서 바지를 내리고 쉬야를 한다.


매 순간 칭찬이 고픈 막둥이는 영락없는 어린아이이다.


"으응~ 되게 빨라졌네??"


쉬야하는 걸 계속 쳐다보고 있기도 뭣해서 뒤돌아 나오는데


기분이 영 찜찜하다.


뭘까... 뭘까...


문 따는 모습에서 갑자기 영화 "도둑들"이 떠올라서 그런가.

마치 사수가 금고 자물쇠를 따는 법을 알려주고 그 방법을 배운 신참내기가 금방 습득해서 금고를 연 것 같은.






모든 물건이 수명이 있듯 화장실 문도 10년이 넘어가니 말썽을 부렸다.

평소와 똑같이 문을 여닫았는데도 안에서 덜컥 잠겨 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그래서 항상 화장실 문 옆에 비상용 이쑤시개를 두었고 안에서 설사 잠긴다 하더라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손쉽게 열곤 했다.



간단히 필요한 것만 살 요량으로 남편과 단둘이 코스트코를 가면서


"엄마, 아빠 없이도 둘이서 잠깐 집에 있을 수 있지? 늑대가 발에 밀가루 묻혀 스윽 보여주면서 엄마 왔다~~ 해도 속아 넘어가지 말고 알았지?"


"아이 참~ 엄마~ 우리가 무슨 어린애야? 우린 유치원생이 아니야아~~ ㅋㅋㅋㅋ"


하고 얼굴을 마주 보며 한바탕 웃고 문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화장실 문이 걱정이 되었다. 혹시나 안에서 또 잠겨버리면 문을 여는 방법을 모르는 초 4, 초 2나 된 다 큰 아이들이 참다 참다 옷에 쉬를 해버리는 불상사가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하기도 싫은 장면이 머릿속을 주르륵 스쳐지나갔다. 결국 신발을 벗고 다시 들어와 둘 다 화장실 앞에 집합시키고 "엄마가 하는 거 잘 봐." 하며 이쑤시개를 들고는 구멍에 폭 집어넣어서 요래요래 쑤시면 문이 열리는 법이다~ 하고 알려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1년이 흘렀나.

오늘 막둥이가 스스로도 문을 빠르게 열었다 생각을 했는지 나를 굳이 화장실까지 데려가 자랑을 했다. 그 자리에선 다소 형식적인 칭찬을 하고 넘어갔지만 기분이 참 묘했다.


견물생심이라고 눈에 보이는 것이 좋아 보이면 사람은 무릇 그것을 가지고 싶고 탐하게 되는 법인데 좋은 것도 아니고 자칫하면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는 괜한 걸 알려주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방법을 모르면 다른 집이나 금은방 혹은 일터에서 무언가 탐이 난다고 해도 "저건 다른 사람의 것이야." 하고 포기하고 넘어갈 텐데, 자물쇠나 금고 문을 손쉽게 여는 방법을 아는 도둑은 그냥 못 지나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기술이 먹힐까 하는 호기심 반, 가지고 싶어 하는 탐욕 반으로 시도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쁜 짓이 될 수 있거나 위험할 수 있는 일은

아예 모르는 것이 나은 걸까.



사과 하나를 깎는다 해도 칼이 필요하다. 하지만 칼은 사람을 죽이는 도구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니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칼을 잡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절대 만지지도 못하게 해야 할까.


감기약? 정량을 먹으면 낫지만 용량을 초과해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바로 응급실행이다.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아이들 앞에선 절대 먹지 말고, 또 손도 대지 말라고 해야 할까.


한여름 물놀이는 또 어떤가? 물에 빠져 죽는 사건사고가 빈번하니 죽을 수 있으니까 절대 물놀이를 할 수 없게 막아야 하는 걸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걱정인형인 내가 또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 하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위험하고 나쁜 것이라 해서

아이들의 행동을 무작정 막고 숨기고 쉬쉬할 게 아니라

하나하나 차근히 알려주고 가르쳐주면서

이면의 위험함과 나쁨, 부도덕함, 옳지 않음을

함께 인지시켜 주면 될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글을 쓰다 얼핏 떠오르는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 하나


감옥에 간 아들을 면회하러 간 엄마에게 아들은 엄마더러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라고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진 엄마는 아들에게 바싹 가까이 다가갔고 아들은 엄마의 뺨을 인정사정없이 때렸다. 너무 아프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엄마는 무슨 짓이냐 따져 묻자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릴 적 남의 물건을 호기심에 처음 훔쳐온 날,

 엄마는 내가 훔친 물건임을 알면서도

 따끔히 혼내지 않고 물건이 참 좋다고 저를 칭찬하셨죠.

 저를 이렇게 큰 도둑으로 키워낸 사람은 엄마니까 엄마도 벌을 받으셔야죠."




매거진의 이전글 남의 집 자식도 귀한 법이거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