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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an 17. 2023

나는 더 이상 친절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에피소드 1>


20대 중반이었던 나.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다가 고등학생들 등굣길과 맞물려 어여쁜 여학생 무리를 지나게 되었다. 사실 그 나이면 안 예뻐도 예뻐 보이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는 시기라 다 예뻤다고 해두자. 한데 무리 중 한 여학생의 가방이 분위기에 안 어울리게 반쯤 열려 있는 게 포착되었다.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가방으로 미루어 보아 오늘의 학교 시간표는 국어, 도덕, 수학 등이겠구나 하고 대충 짐작이 가능했다.


'가방만 열리지 않았어도 푸릇하고 예쁜 모습이 더 예쁘게 보일 텐데. 조금 칠푼이처럼 보이는 군'


이란 생각이 들어 난 상냥하게


"학생~ 가방이 열렸네요~" 하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학생이 날 째려보며 한마디.


"씨발, 무슨 상관인데~"


이 무슨 거지 같은 경우인지... 학교는 주 5일, 욕 하는 학원도 그에 맞춰 주 5일 다니는 걸까. 발음이 엄청 찰졌다.


상대가 욕을 할 수도 있겠다고 예측이 가능했다면 가드를 촘촘히 하고 방어태세를 갖추었을 터인데 워낙 욕과는 담을 쌓고 살던 나라서 당황 그 자체였다. 할 줄 아는 욕은 몇 개 없더라도 약간의 비상용 욕을 장전하고 돌려 쓰기라도 했을 텐데 무방비 상태였던 나는 속수무책 당하고 말았다. 너무 황당했고 그 무엇으로도 나를 지키지 못한 채 그저 뜨억 하며 동공만 커진 사이.


그 무리들은 자기들끼리 킬킬거리며 유유히 지하철을 내리고 말았다.


내 가슴엔 때 아닌 시린 겨울바람이 관통하며 지나갔다.

내 마음속 스크래치는 이제 누구에게 위로를 받아야 하나...





<에피소드 2>


퇴근하며 운동도 할 겸 에스컬레이터를 가뿐히 지나치고 그 옆 지하철 계단으로 오르던 중.


호호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커다란 짐을 낑낑대며 한 계단 한 계단 겨우겨우 끌어올리는 것을 목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주로 이용하므로 계단에는 할머니와 나뿐이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힘든 할머니를 도와드려야겠다는 착한 마음 하나만으로


스을쩍 다가가 큼지막한 짐의 한 귀퉁이를 잡으며


"도와드릴게요~"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어허~!!!!!!!!!!!!!!!!!"


사극에서나 들을 법한 귀를 때려 박는 호통소리. ㅡ.ㅡ


"고마워요~"라는 말을 "어허!"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내 귀가 잘못된 건가?

네 글자가 두 글자 감탄사로 잘못 들릴 수가 있기는 한가?

하는 생각을 멍 때리며 하던 중에 할머니는 내가 또 짐을 잡을까 싶어 못 건드리게 다급하게 행동 개시를 하셨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그 커다란 짐을 내가 서 있는 반대방향으로 가뿐히 들어 이동시키셨다.

아니 이렇게 힘이 세신데 아까는 왜...


그건 그렇고 난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걸까...




거의 일주일 안에 두 사건을 겪었다. 아니 당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평소 남을 도우며 살지는 못할지언정 피해는 주지 말자는 나름의 모토가 있었으므로 당연히 남한테 욕먹을 짓은 하지 않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욕먹을 짓을 한 게 아니라 도와주려는 선한 마음으로 한 행동에서 듣게 된 쌍욕과 호통...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얼굴이 험상궂어진 걸까?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요목조목 살펴보았다. 역시 빼어난 미모는 아니다. 그렇다고 엄청난 못난이도 아닌 그저 흔녀에 불과했다. 아무리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내 얼굴이 악하게 생긴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나는 결심했다.


좋은 소리도 못 듣는 친절 따위

다시는 베풀지 않으리.


결심했다고 궁금증이 어디 가진 않았다.
나름대로 추리를 해보았다.


그 여고생.

수치스러움이 다른 어떤 감정보다 온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그 나이대의 그 여학생은 친구들 앞에서의 창피함을 못 참고 앞으로는 볼 일 없을 나를 향해 욕지거리를 하여.. 잠깐의 창피를 무마시키고 약간의 영웅심 같은 걸 내보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학생이 가지고 다녀서는 안 되는 담배라던지, 담배 같은, 담배일지도 모르는 걸 넣어둔 게 혹시 보일까 쫄았던 걸까.


그 할머니는 나 이전에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이 도와주는 척하다가 짐을 훔쳐가 버린 경험이 있어서 그랬던 걸까? 그래서 나도 양의 탈을 쓴 늑대로 보였던 걸까?



너무 큰 충격과 어이없음에 그날 나는 정말 소설을 쓰고 앉아 있었다.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지만 짐작만 할 뿐... 당사자의 입으로 직접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니 너무 답답하고 속이 상했다.


갑갑한 마음만큼 결심은 굳어져 갔다.
이제 앞으로 나는, 더 이상 친절을 베풀지 않겠노라고...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누군가는 그랬다. 바닥에 돈 흘렸냐고. 왜 그리 바닥만 쳐다보며 걷느냐고.

바닥만 쳐다볼 수밖에. 고개를 들고 넓은 시야로 다니다 보면 괜한 오지랖에 사람들을 돕다가 또 상처를 입을 것이 뻔하니까.



그렇게 세월이 흘러


작년 2022년 1월, 일본 지하철에서 고교생 폭행사건에 대한 뉴스를 본 기억이 났다.


전철서 흡연 지적 당하자 고교생 폭행·폭언한 20대男 "정당방위였다" | SNSFeed 제휴콘텐츠 제공 '실시간 핫이슈' (dispatch.co.kr)



지하철 내에서 한 고교생이 흡연을 하지 말아 달라고 20대 남자에게 요구를 하자 지적당한 20대 남자가 그 고교생을 폭행했다는 뉴스였다. 정당한 요구를 했음에도 적반하장으로 고교생을 폭행한 20대 남자의 행동이 어이없기도 했지만 폭행장면을 눈앞에서 번히 보고 있던 주변 승객들은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폭행을 말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는 더 놀라웠다.

일본 전역에서 이슈가 되었고 우리나라까지 이 기사가 퍼지게 되었는데 기사화되고 기사에 달린 댓글로 중재하지 않은 이유를 대략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유인즉슨

폭행을 말리다가 과잉방어로 오히려 검거될 수도 있다.
혼자 제지하려다가 오히려 폭행을 당할 수 있다.
지인이라면 몰라도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제일 좋다.


뭐 이런 여러 댓글들이 달렸다고 하는데 다 수긍이 갔다. 나도 솔직히 비슷하게 느꼈던 바이므로...



그런데 역으로
내가 폭행을 바라보는 방관자가 아니라

폭행을 당하는 당사자였다면...???
또는 내 가족이 폭행을 당했다면...???
폭행을 당하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을 땐 아찔했다.

주변에 자기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도움을 청해도 그냥 멀뚱멀뚱 쳐다만 볼 뿐 도움의 손길은 주지 않는 방관자들에게 얼마나 절망과 좌절감을 느끼게 될까...


요새 한창 인기몰이 중인 "더 글로리"의 문동은(송혜교)도 자신이 학교폭력을 당하기 직전, 폭행을 당하는 다른 친구를 도와주지 못하고 방관한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생각이 난다.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나 여러 사람이 다 같이 힘을 보태었다면 한평생 복수로 얼룩진 불행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을 텐데...




요새 엄마들은 자식들이 험한 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런 이야기를 한다.

"누가 도와달라고 하면 그냥 모른척하고 지나가야 해."

혹은

"어른들은 어린이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아. 너희 도움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건 나쁜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거야."

라고.

정답이 아닌 것도 알고 모두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이 사회가 더없이 삭막해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뱉고 본다.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또 내 새끼를 지킬 방법이 달리 없어서 내 마음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울지라도 내 양심에 반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하고 또 그 아이는 커서 그 자식들에게 하게 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갑갑해져 왔다.




눈을 감고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대사로 만들어 장면을 재구성해본다.



그 여고생이 살짝 수줍은 얼굴로

"앗~ 감사합니다~ ^^"

하고 열린 지퍼를 닫았더라면,

그 할머니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아이고~ 무거울 텐데 고마워요~ ^^"

하고 도움을 마음 편케 받으셨더라면.


오지라퍼인 나는 그동안 좀 더 선행을 베풀고 살지 않았을까.


서로 도와 주고 도움 받는 것을 숨 쉬듯, 물 마시듯, 밥 먹듯 편하게 한다면

좀 더 살만한 세상이 올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동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영화 장면 중 하나를 어쩌면 일상에서 매일같이 볼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출처. 셔터스톡. <친절의 씨앗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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