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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an 20. 2023

유튜브 미로에서 헤매다가

시간 순삭 조심하기

방금 나만 경험한 나만의 글을 쓰다가 첨부 영상이 하나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 유튜브로 들어갔다가 첨부 영상은 커녕 유튜브가 나에게 이것 좀 보라며 대문에 걸어둔 여러 영상들의 유혹에 이끌려 두 시간을 허비하고 나왔다. "이제 그만 봐야 해" 하고 카리스마 있게 결단을 내려 나온 것은 아니고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일단 배를 달래려 일어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그만큼 보았으면 됐지, 유튜브.


"도깨비"부터 "멜로가 체질", "나의 해방일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뭐 하나 앞줄에서 뒤로 빼놓기 어려운 라인업이다. 외국인들조차 리뷰하고 감동받았다며 눈물을 흘릴 정도이니 어깨 으쓱해도 될 만한 드라마들이다. 이제 앞으로 이런 화제작이 또 나오겠나 하던 차에 등장한 "더 글로리". 이제 막 재밌으려고 하던 차에 1부가 끝났다며 기다리란다. 2부는 3월에 시작한다고 하니 이미 복수의 짜릿한 맛을 잔뜩 기대한 시청자들에게 기다림은 그야말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유튜버들은 이런 좋은 떡밥을 놓칠세라 앞다투어 더 글로리의 요약본, 축약본, 복선, 자신만의 예측, 등등을 편집하여 내놓기 바쁘다. 기다림이 지루한 사람들은 이거라도 보며 아쉬운 마음 달래자 하는 심정으로 클릭을 할 테니 조회수가 나쁘지 않다. 역시 무얼 하든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면 중간은 갈 수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나 역시 "더 글로리 1부가 던져준 떡밥으로 예측하는 2부"라고 된 영상을 보고 나오는 길인데 이를 제작한 유튜버는 하루 이틀 경력이 아닌지 짜임새가 매우 훌륭했다. 대략 15분 정도로 구성된 내용은 내 눈과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15분은 왠지 아쉬워.' 하던 중에 "나도 좀 봐줘~ 봐 달라고~" 하는 듯 본 영상 아래로 조그만 영상들이 줄을 섰다. "새콤달콤"이라는 연애 한복판에 있는 남녀 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도 보이고 "더 글로리"의 주제와 맥을 같이 하는 학폭 웹드라마인 "3인칭 복수"도 보였다.


더 글로리의 악역인 박연진의 고등학생 역을 맡은 배우 "신예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길래 영화인지 드라마인지도 모르고 3시간 영상을 겁도 없이 눌러버렸다. 요새는 트렌드가 복수인가. 역시나 이 드라마도 복수가 주제다. 한참을 흥미롭게 지켜보다 뱃속에서 밥을 달라고 하도 아우성을 치길래 가까스로 정지버튼을 클릭하긴 했는데.



그래도 쓰던 글은 마저 써야지 하며

나를 기다리던 쓰다 만 브런치 창을 띄우는데

갑자기 적막하다.


금방 유튜브 영상에서 하필 망치로 사람을 가격하는 잔인한 장면이었어서 긴박감은 얼마나 상당한지, 소리는 또 얼마나 질러대던지 눈을 감아도 잔상까지 남아있으니 대비는 더욱 극명히 이루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 눈은 주인공의 조그만 행동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쫓아다니고 귀에 쟁쟁한 긴장감 넘치는 음악으로 모든 촉각이 영상에 빠져들 것만 같은 몰입감이었는데.


브런치 화면을 켜고 고요함이 엄습하자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몰입감을 느끼다가 갑자기 온 신경과 연결된 우두머리 신경 중 하나가 툭 끊어진 건가 하는 느낌도 들고.

10분 아니, 3분 영상도 길다고 요새 15초짜리 쇼츠가 판을 치는 세상에 적막감을 느끼며 글을 쓰고, 또 고요함을 즐기며 글을 읽을 독자분이 계시다고?


나부터도 극과 극의 상황에 놓이니 갑자기 글에 대해 맹숭맹숭 재미가 없어질라고 하는데?


우선 배가 고프니 밥을 한 숟갈 떠 넣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1980년도 즈음만 해도 한 집 건너 한 집씩 꼭 신문을 보던 때가 있었다. 제발 대문 안 쪽으로 넣지 좀 말라고 신문사절이라고 대문에 그렇게 붙여놔도 빠지지 않고 꼭 넣어주던 신문. 그러다가 TV가 각 가정으로 보급되면서 신문이며, 책이며 이제 다 없어질 판이라며 해당 업계 종사자들과 책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걱정의 목소리가 높았었다. 한데 아직도 신문은 있고, 여전히 책은 존재한다. 물론 신문도 변화를 꾀하여 핸드폰 안에 들어가 있고 책 또한 전자책이라고 해서 종이책이 아니어도 즐길 수 있긴 하지만.


그 당시 우려했던 것처럼 신문이나 책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유튜브와 SNS가 제아무리 환대를 받는 시대라 하더라도 그 외의 것의 이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건 그것들 또한 나름의 존재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잠시 숨을 돌린 후 내가 쓰려고 했던 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본다. 눈앞에 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영상들 물론 재미도 있고 시간 죽이기에 그만한 것이 없는 건 사실이다. 허나 그건 그것 나름대로의 흥미를 줄 것이며 글은 글 나름대로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각자가 가지는 전달력은 각자 다른 루트로, 잠들어 있는 우리의 세포를 깨워 신선한 자극을 줄 것이라 믿는다.


그나저나 사람들이 책을 좀 더 가까이하고 좀 더 읽어야 할 텐데...

우선 나부터라도 열심히 읽어보기로 다짐해 본다.  :)




<미로> 출처.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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