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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Dec 16. 2022

기쁘다 코디 오셨네

재빨리 청소하려면 날 따라 해 봐요

어제는 11월부터 그토록 오겠다던 정수기 코디가 방문하기로 되어 있는 날이었다.
원래 11월에 잡힌 그 일정 그대로 진행하려 했는데 갑작스러운 가정사로 난 살며시 문자만 남겼었다.

점검일정 다음 달로 미루고 싶습니다.


아직도 코로나 시국이라 그런지 자세한 사항은 묻지 않는 코디님. 간단히

네~ 알겠습니다.


라는 답이 돌아왔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12월, 코디님이 오시는 날이다.



아침부터 초비상 사태를 맞이하였다.
요새 들어 하루 24시간이 마치 그의 삼분의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가는지라 청소라고는 전혀 못 했기 때문이다. 청소를 좀 몰아서 하는 스타일이다. 말이 좋아 몰아서 하는 거지 솔직히 말하자면 좀 게으른 축에 속한다. 그래도 나름 노력한다며 정리, 수납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집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에서 안 빌려 본 책이 없을 정도로 다독을 했다. 성의를 보였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역시...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같이 "청소를 글로 배웠어요" 이것은 안 될 일이었다. 그저 자신만의 노하우로 그때그때 어질러진 것은 바로바로 해치우고 정리하는 게 제일 중요한데 실행도 안 하면서 책만 본다고 그게 될 리 만무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 갈 준비, 학교에 차로 데려다 주기, 집에 와서 재택근무하면서 내 밥 먹기 (거의 내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일 경우가 많다), 그렇게 일을 했는지 말았는지, 12시 반이 되면 다시 아이 데리러 가기,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꼭 한 타임 차이가 난다. 1시쯤 만난 아이를 센터에 데려다주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딸아이를 만나 또다시 센터에 데려다주고 아이들 무거울세라 두고 가라 했던 아이들 가방 2개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들어오면 거의 난 초주검이다. 학교에 고작 몇 시간을 있는다고 뭐가 그리 갖고 다녀야 할 것이 많은지 그렇게도 학교에 좀 두고 다니라 얘기해도 준비성이 철저한 내 새끼들의 가방은 아주 돌덩이로 가득 채운 것처럼 무겁다. 덕분에 양쪽에 맨 가방으로 내 어깨는 남아나질 않는다.


그렇게 아이들의 로드매니저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2시 반 3시 사이... 어영부영 일 하다 보면 5시까지 가야 하는 알바시간에 맞춰 출근 준비. 10시에 끝나서 집에 들어오면 거의 난 바닥에 드러누워 기절직전이다. 한두 가지를 포기해야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재택근무를 놔버릴 수도, 글을 포기할 수도 없다. 시간 내서 스트레스 해소하기 위해 취미생활들도 하던데 나에게 글은 의무라기보다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이므로 잠시 짬을 내 쓰다 보면 삶의 활력도 찾게 되니 이걸 놓을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청소할 시간은... 전혀 없다. 한 번은 아르바이트하는 중인데 빨래 안 했냐며 딸아이 속옷이 없다고 신랑한테 전화가 온 적도 있으니... 세탁기가 빨아주고 건조기가 말려주는 빨래도 그 지경인데 청소할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고... 장황하게 핑계를 대본다.






출처. 블로그 최여사라이프





사설이 길었다.
어찌 되었든 코디님은 오신다 했고 집안은 난장판이다.
우선 큼직큼직하게 눈에 거슬리는 것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싱크대에 남아있던 설거지 두 판을 해치우고 식탁에 너저분한 것들을 싹 다 정리하고 가장 처음 보이는 현관 신발은 신발장 안으로 넣어버리고 현관 먼지청소까지 싹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옷들이 난관이다. 의자마다 걸려 있는 옷들, 걸 수 있는 데는 모두 걸려 있는 옷들을 주섬주섬 잡아다가 몽땅 아이방으로 밀어 넣고 방문을 닫았다. 개야 할 빨래가 담긴 바구니를 들어다가 안방에 넣고 안방 문을 또 닫았다. 문은 닫아야 맛인 듯. 속전속결 1초의 낭비도 없이 아주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나는 참 주변의 시선을 너무도 의식한다.

좀 청소가 덜 되어 있으면 어떠냐. 코디가 우리 집서 사는 것도 아니고 5분 정도 점검이 끝나버리면 코디는 갈 텐데. 몸이 힘들면 그냥 두면 되는 것을 뭘 그리도 악을 쓰고 청소에 열을 올리냐고 할 수도 있는데... 나 또한 남의 집에 갔을 때 느끼는 바가 크므로 그게 잘 안된다. 깨끗한 집을 보면 와아~~ 집주인이 달라 보인다. 그런데 반대로 돼지우리 같은 집을 보면 그렇게 친했던 친구여도 원래 주던 점수에서 마이너스 점수를 주게 되어 있더라...


나도 그들을 그렇게 평가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평가하겠지 싶어 최대한 열심히 움직였다.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마저 든다. 마치 드라마에서 청소하는 주인공을 보여줄 때 빨리 감기 한 영상과 흡사하다. 3배속쯤 했는지 주변의 어지러운 물건들이 하나 둘 치워지는 게 눈에 확 확 들어오는 것처럼 나도 꼭 드라마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열심히 치웠다. 정 안 되겠는 건 옷장이며 방안으로 마구 밀어 넣었다. "짱구는 못 말려"에서 짱구 엄마가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 때문에 집 정리를 서두르다가 결국엔 옷장 안에 마구잡이로 물건들을 집어넣었다가 자꾸만 열리는 문을 온 힘을 다해 닫던 장면도 생각이 났다. 혼자 피식거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치우고는 드디어 결전의 3시 30분.

띵동~! 정수기 점검 왔습니다~~~


네에~~


나는 마스크를 집어 쓰고 우아한 목소리로 늘 이런 깨끗한 환경에서 사는 척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오늘은 직수관 교체할 거고요. 소독해 드리고 점검해 드릴게요~~


하는데 아무것도 안 들린다.

그저... 휴우... 이제 쉬는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과 내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 공식적으로 쉬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진맥진하며 쉼도 잠시, 6시가 되니 퇴근길에 아이들을 데리고 신랑이 들어온다.
신랑이 한마디 한다.

오~~~~ 깨끗한데?
정수기 코디 아줌마 매달 오라 그래야겠어~
아니, 일주일에 한 번씩 돈을 주고서라도 오라 해야겠어~~~ㅋㅋ


ㅡ.ㅡ
여보~!!!!!!!!!!!!!!!!
이 무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
반성도 되고 어이도 없고 힘도 들고...

여보...
우리나라처럼 깨끗한 물이 나오는 나라도 없다는데...
그냥 우리 정수기 없애고 수돗물 끓여 마실까...?


아주 그냥

힘들지만 쾌적하고 보람찬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이제 정리는 몰아서 하지 않고

그때그때 보이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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