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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an 19. 2023

나는 겁쟁이랍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https://youtu.be/aBmtrAwMH1U



며칠 전 남편이, 자판을 도도도독 두들기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한마디했다.

자식 자랑, 남편 자랑, 돈 자랑은 팔불출이나 하는 거라며 엔간하면 자랑은 하지 말란다.

그러고 보니 자식을 성인으로 키워낸, 나이 지긋한 부모도 아니고 이제 겨우 초등 5학년, 3학년일 뿐인데 자랑 못하고 죽은 귀신이 붙은 것처럼 눈만 뜨면 자꾸 자랑만 해 온 게 아닐까 하는 반성이 되었다.

남편은 음... 남편은 나에게 과분한 존재이긴 하다. 술, 담배 안 하지, 어른들 앞에서 공손하지, 아이들에게 최고의 아빠고 내가 있는 시간에도 주방에 들어가길 서슴지 않고 요리를 해 주고, 이만하면 100점 만점이라고 보는데 그래서 입만 열면 자꾸 자랑이 나오는 것인데 이혼이 판치는 세상에서 자꾸 남편 자랑... 이건 안 그래도 울고 싶은 사람 앞에서 더 울라고 뺨 때리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돈 자랑... 빚 없으면 부자니까 돈은 뭐 그 정도로 해두고...


일상을 소재로 가져다 쓰는 나에게 자식과 남편을 가져가 버리니 글을 쓸 소재가 사라졌다.

가뜩이나 주변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광고 아닌 광고를 하고 다닌 것 때문에 이제야 뒤늦게 아차 싶다. 혹시나 내 글을 읽을까 겁이 난다. 내 글에 우연히 녹아들어 간 캐릭터에 대해 이거 혹시 나한테 하는 말인가 하는 걱정들을 하는 걸 보면 아니라고 그렇게 일러줘도 개운치 않아 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말이다.

이렇듯 차 떼고 포까지 떼야하는 상황에 직면하니 소재가 하나씩 둘씩 사라져 버리고 내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 차버린다.


주변인들에 대한 것을 안 쓰면 되지 않느냐고?

그럼 전문가 포스를 폴폴 풍기며 사회, 과학, 경제, 정치글을 써야 하는데, 또 그런 깜냥은 안 된다.

어디를 좀 싸돌아다녔다면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쓴 "쥘 베른"처럼 여행에 대한 글이라도 쓸 텐데 그렇지도 못하다.

요새 힙하다는 강아지? 고양이? 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우리 집에는 털 끝하나 없다.

요리는 손을 놓은 지 꽤 됐다.



그럼...

그럼 난 뭘 써야 하지?

괜히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주변에 소문을 내었다는 후회가 몰려온다.

소문을 내지 않고 필명으로 글을 썼다면 주변인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감정만을 써도 벌써 글이 한 트럭은 나왔을 텐데. 혹여나 이 글을 읽고 계신, 아직 작가는 아니지만 곧 들어오셔서 작가가 되실 분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네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소문을 내지 말 것을 미리 알려드리는 바이다. ㅠ.ㅠ



1월 9일 다음 메인에 오름. 강지영 작가님의 번쩍번쩍한 금반지에 가려 빵이 참 맛없어 보이긴 하지만 ^^ㅋ


주변에 알리지 않아도 가끔씩 다음 메인에서 띄워주니 알 사람은 저절로 알게 되는 상황도 벌어진다. 조회수가 무려 5천 가까이 나왔다. (아이고. 또 자랑질을 했다.)




괜히 1일 1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사람 일이라는 게 하루 앞 날, 한 치 앞을 모르는 법인데 쓰고 싶으면 속으로만 다짐을 할 것이지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서 안 쓸 수도 없고. 이거 참. 진퇴양난이다. 글을 매일 쓰기로 해놓고 글 소재는 하나씩 두 개씩 없어져 가는 상황이라니.


거기다 소심한 겁쟁이라서...

웃겨 죽겠다고 재밌어하면서 내가 내 글을 쓰고 있다 보면, 지금 당장 힘들고 고통스러움에 직면하신 분들은 내 글을 읽고 더욱 상처받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된다. 사람이란 신기하게도 자신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인 상대를 보고 난 저 정도는 아니니 다행이야 하며 위로를 얻기도 하니까.


안 해도 될 온갖 걱정을 하는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러니까 걸리고 오만 것이 다 신경이 쓰여 이것 참 편안 마음으로 글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머리털이 다 뽑힐 것만 같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글을 또 쓰고 있느냐고?


모르겠다. 나도 왜 자꾸 이렇게 글을 쓰는지.

음... 관종이라서 그런가. 

요새 읽고 있는 "작가의 목소리"의 저자 이경 작가님 의 글 중 

"우린 모두 관종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글을 쓰는 사람은 관종의 기질이 다분하다."고 한 문장도 떠오른다.

내 글이 어떤 사람들에게 읽힐까도 궁금하고, 공감은 받을 수 있을지도 궁금하고, 라이킷은 얼마나 눌릴지도 궁금하고, 댓글은 어떤 댓글이 달릴지도 궁금하고 한 마디로 관심을 받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집안의 반려견과도 같은가 보다.



글 발행을 하고


어머~! 루시아 글이닷~! 하고 버선발로 달려오실지.


차암~ 한결같다. 시답잖은 글을 오늘 또 썼어? 하고 흘겨보며 누르실지.


얼마나 또 주접을 떨어놨나 하고 눌러나 보자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만 좋으면 됐지. 뭐 그걸로 되었다.

모르겠다. 아. 모르겠다. 아주구냥 아모르파티다~!




**항상 마음이 답답한 게 있었는데 글로 풀어서 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래서 글을 쓰나 봅니다. 그리고 글을 쓸 소재가 줄어들었다는 이 소재를 이용하여 글을 썼네요? 푸핫. 재미있는 요지경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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