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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an 28. 2023

라이킷을 못 누르는 심정을 아실지

우유부단의 극치

하루에도 수십 번씩 띠리링 띵띵

울리는 알람 소리가 참 행복하다.


만일 글을 썼는데

어디 외로운 섬에 나 혼자 갇힌 것처럼

나 혼자 쓰고 내가 내 글을 읽고

고이 접어 놓는 것으로 끝이었다면 이렇게 열심히 쓸 수 있었을까.


활짝 개방해 놓은 곳에 펼쳐 놓으니

여러 독자님들께서 감사히 걸음 하시어 읽어주시고

없는 시간에 기꺼이 짬을 내시어

댓글 혹은 라이킷의 발자취를 두고 가시니

이렇게 감사할 데가 없다.


두서없는 글을 내가 무엇 때문에 이리 쓰고 있는 걸까 하고 스스로 의문이 생길 때쯤

마침 울리는 라이킷 알람 소리는 그래도 내 어쭙잖은 글이 공감을 불러일으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또 내 글을 쓰게 하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물론 브런치 알람소리 전부가 내 글의 공감을 표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내가 구독한 작가님들께서 새 글을 발행하실 때마다 알람은 울린다.

그동안 내 글에 와서 읽어 주셨음에 빚을 진 나는 또 알람이 울리면 득달같이 읽으러 가고 또 라이킷 하나를 선물해 드리고 나온다.

전문적인 용어들이 나오고 글에 심오함이 잔뜩 담겨 부족한 내 고개가 갸우뚱해질 때에도 어지간하면 라이킷을 드린다.


내가 라이킷을 받아봐서 알기에.

힘이 되어 준다는 걸 알기에.

라이킷 수치는 큰 의미가 없지만

아주 의미가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정성을 다해 라이킷을 살포시 누르고 나온다.




새벽 4시쯤 눈이 떠졌다. 간밤에 12시쯤 기절해 잠들었더니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눈이 뜨였다고 벌떡 일어나면 섭섭하지. 포근한 이불 안의 온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브런치 앱을 연다. 내 글 통계 유입단어에 엄마라는 단어가 있길래 Daum앱을 열어 괜히 "엄마"를 한 번 검색해 본다.

나오라는 내 글은 안 보이고 다른 유사제목들이 한가득이다. 그중 평범해 보이지 않고 매우 아파 보이는 글 하나가 유독 내 시선을 잡아끈다.



엄마에게 머리채를 잡혀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는 가까스로 그 상황을 모면했다는 내용인데... 알코올중독의 무서움과 진저리 나는 과거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낸 글이었다. 워낙 글로 잘 풀어내어 그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릴 적 나의 부모님도 한 파이터 하셨으므로 그런 비슷한 경험들도 기억이 났다. 한때 경찰이 오기도 하고 뭐 그랬었지. 그래서 글쓴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느 정도 그 마음을 안다.

글을 건성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한 자 한 자 눈으로 꾸욱 꾸욱 눌러가며 정성을 다해 읽었으니 다 읽었으면 이제 라이킷을 눌러야 한다. 하지만 손가락이 하트를 앞에 두고 일시정지다. 누를 수가 없다. 하필 라이킷도 그리 많지가 않다. 아직 한 자릿수... 브런치 들어오신 지 얼마 안 되신 분... 거기에 라이킷을 누르면 대번에 '라이킷 가뭄의 이 글에 이렇게 감사하게도 단비를 내려주신 분은 누굴까.' 하며 99.9퍼센트의 확률로 내 브런치를 구경하러 오실 것이다. 그래서 못 누르겠다.


내 브런치는


하하 호호

너무나 행복해요.

감사해요.

웃겨 죽겠어요.

살맛 나요.

사랑해요.

의 향연들이므로...


누구 약 올리는 건가...

부럽구만... 나는 왜 이런 식으로 살 수 없는 걸까...

하게 되실까 봐...


그렇다고 없는 번뇌와 고민을 짜내어 글을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 솔직히 말하면 고민이 없지는 않다.

애써 외면하는 중인 듯하다.

고민을 꺼내어 글로 풀어 치유를 받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아예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게 하여 망각으로 치유받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더 웃는다.

너무 아픈 웃음인가.



아무튼 지간에 내 브런치는 너무까지는 아니어도 약간 밝아서 마음이 아프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보기에 부러움 내지는 더 아픔을 주는 일이 되면 어찌하는가와 같은 고민을 일전에 썼을 때 귀한 구독자분께서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하면 글 못 써요.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하다 보면 쓸 글이 없지요. 그냥 작가님은 그런 생각 무시하고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을 쓰시면 돼요"

라고 따뜻한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다.


정말 감사하다. 그래서 그러지 않으려고,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하고 마음먹고 마음 편하게 글을 쓰려고 했는데 그게 참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인디 가수 "요조"는 자신의 허당미를 과감하게 공개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남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어눌하고 허술한 모습은 감추려는 게 일반적이므로 사람들은 요조에게 묻는다.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바보 같은 모습을 그렇게 다 이야기를 해버리면 좀 창피하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요조가 하는 말.


세상에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저를 보고 위안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종종 쓴소리를 하고 자주 자아비판을 늘어놓는다. 훌륭하지 않은데 훌륭한 척하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은 구멍 난 포장지인데 반들반들한 셀로판지로 보이고 싶지 않다. 낮은 평가보다 괴로운 건 과대평가를 받는 일. 때때로 나는 일부러 징징대고, 제 살 깎아먹기라도 내가 '골라낸' 모습만 보여 주고 싶지 않다. 이건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나를 통해 위로받을 누군가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고군분투와 삽질에 대해 최대한 적극적으로 말하는 편인데, 이것이 타인에게 적잖은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가수 요조) ---  태도의 말들 113p




정말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나보다 힘든 상대를 보고 알게 모르게 위안을 받는 사람...

행복한 모습을 보고 마음 따뜻한 위로를 받는 사람...


나는 후자인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딱히 고통스러운 생활은 아니지만 하루하루가 밋밋하고 지루한 삶 속에 무겁지 않은 소재로 살짝 웃음 지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의 행복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나는 주로 그런 글을 쓴다. 굉장한 행복은 아니지만 일상의 소소한 웃음들을.


어찌 되었든 궁금하긴 하다.

마음 아픈 글들을 읽게 되면 내 브런치에 오셔서 극 반대인 상황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실 수도 있을 분에게 라이킷을 누르는 게 힘이 될까.

아니면 상대적 박탈감의 위험이 있으니 나 같은 사람들은 조회수만 살포시 올려주는 것이 나을까.

만일 양팔저울에 그 둘을 놓으면 어느 쪽이 더 무거워 내려앉을까.


제 심정 이해가 가실까요?

저 혼자만 이런 생각하는 건 아니죠?

새삼 궁금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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