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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r 02. 2023

당신의 실수에 쾌재를

남편이 무쳐준 시금치나물


이렇게 맛있다면 서있는 이 자세로 밥도 없이 시금치반찬 한 통을 다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이 마지막 젓가락, 이번이 마지막 한 입, 딱 이번이 마지막 하다가 벌써 다섯 젓가락을 먹고는 안 되겠다 싶어 뚜껑을 탁 덮어버렸다. 입안에 고소한 참기름 향이 스윽 퍼지는 것이 아직도 참 아쉽다.


결혼 첫 해 내가 끓인 된장찌개를 미식가인 어머님께서 한 술 뜨시면서 당신이 만드신 된장찌개보다 더 맛있다고 하셨을 정도니 솜씨가 아예 없진 않은데도 음식은 왜 그런지 남이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는 것 같다. 대접받는 느낌이 나서 그런가? 아니면 조리하며 냄새 맡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음식을 먹어서 그런 걸까? 아마 둘 다일 수도 있겠다.






실수라는 걸 거의 안 하는 참 멋진 남편이자 존경하는 남편이 몇 달 전 일생일대의 중대한 실수를 한 번 한 적이 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 일을 난 잊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만에 하나 치매가 걸린다 해도 그 사건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라 여겨질 정도이니 뾰족한 유리조각이 내 심장에  박혀 있는 것만 같다.



그 일이 있던 당일

나는 하루 내내 꼬박 침대에 누워 꼼짝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일인 줄만 알았지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냥 이대로 잠자듯 삶이 끝나버리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잠을 잤다. 아무런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고 다른 일을 할 의미도 찾을 수가 없었기에. 자다가 눈이 떠지면 울었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악몽을 꾸고 놀라 깼다. 또 잠을 청하고 그렇게 꼬박 24시간을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는데, 새벽에 눈을 떴을 땐 슬퍼만 한다고 달라질 게 없음을 깨달았다. 곤히 잠든 내 새끼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매정한 결정을 하고 싶지 않았고 여태 그래왔듯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고 싶었기에 잊기로 마음을 먹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코끼리가 더 생각나는 법이지만 잊어야 해, 잊어야 해, 하며 잊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안간힘을 썼다. 자꾸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기를 며칠 후 내 노력이 가상했는지 나의 뇌는 슬며시 백기를 들었고 조금씩 그 사건은 잊혀 갔다. 다시는 웃을 수 없을 것 같았고 다시는 남편 얼굴도 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나도 모르게 어느새 조금씩 웃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약이 되어 지금은 일상의 삶을 유지하며 잘 살고 있다. 문득 그때의 일이 갑자기 떠오르는 때가 있고 다시 슬픔과 분노가 차오를 때가 있지만 자신의 실수를 절절히 깨닫고 나에게, 또 가정에 충실한 남편을 보고는 나 하나만 참으면 되는 거겠지, 나 또한 실수를 하는 사람이니까 하며 용서하기로 하고 넘어갔다.



다행인 건지 남편은 그 후로 참 많은 부분을 나를 도와주며 살고 있다. 이미 그 이전에도 집안일의 많은 부분을 알아서 돕긴 했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팔을 더 걷어붙이는 결과가 되었다. 우리에게 금기어가 되어 버린 그 사건을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고 아무래도 쿨하게 용서하고 넘어간 내가 고마운지 죽을 때까지 나에게 은혜를 갚으며 살아갈 작정인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다. 뭐가 많이 좀 서투르다. 신도 때로 실수를 하는데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래도 신의 경지에 다다르고 싶어 하는 몇몇 욕심 많은 사람들은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목표한 바에 근접하는데, 습득이 느린 나는 같은 노력을 해도 그렇게 높은 순위의 자리에 앉을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안다. 그러니 실수는 얼마나 많이 할 것이며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실수가 앞으로 내가 할 실수를 미리 용서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앞으로 일어날 실수의 방패를 이미 얻었다고 해야 하나. 나는 앞으로 그 어떤 실수를 하거나, 일을 그르치는 일이 있다 손치더라도 모두 용서가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까임 방지권과도 같은 실수 응징 방지권이 생긴 느낌이랄까?



그러니 실수를 굳이 나쁘게만 볼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완벽한 사람이란 없는데 상대가 실수를 하면 "오호, 나중에 내가 실수를 해도 한 번 무마될 여지가 생겼군."하고 유하게 마음을 먹으면 되니까. 오히려 상대가 실수를 했을 때 너그러운 마음으로 웃어준다면 상대는 더욱 고마우면서 더욱 미안해지겠지?



이쯤 되면 오히려 상대의 실수에 쾌재를 불러도 좋을 성싶다. 그리고 너그러이 용서를 해 준 후 나중에 언제가 될지 모를, 하지만 반드시 할 수밖에 없을 내 실수에 대해 미리 용서받을 수 있는 티켓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실수의 경중과 총량은 다르겠지만 실수를 많이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유하게 먹을 수는 있을 테지.





시금치를 씻는 남편.


"시금치 왜 이리 깨끗하지? 역시 코**코 시금치야~"

라고 하더니 이내

"물에 씻으니 흙이 나오긴 나오네~"


해가며 내가 아이들과 함께 개학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은 시금치를 데치고 양념하더니 뚝딱 반찬 하나를 완성해 냈다.


"시금치, 뭐 양념할 게 없는데? 참기름만 넣으면 끝이야~"

"응? 참기름만? 소금은 안 넣어?"

"넣었지~"


한 입 먹어보라며 나보고 "아~" 하란다.

슬쩍 보니 마늘도 보이고 깨도 보이고 넣을 건 다 넣어 놓고는 참기름만 얘기하는 허세라니~ ^^


나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조금씩 집어 입에 넣어준다.

우린 셋이서 오물오물 냠냠 맛을 본다. 아삭아삭한 것이 데친 시간이며, 간이며, 고소한 맛이며 아주 딱 적당하다.


"와아~~ 자긴 전생에 수라간 장금이었나 봐~~ 어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어?"

하며 우쭈쭈 칭찬을 날려 주었다.


반찬가게를 해야 하나.

멸치볶음에 이어 시금치나물까지 이 사람 정말 능력이 아주 무한대인 것 같은데.

앞으로 실수 하나 정도는 더 눈감아 줄까~ 싶기도 하다.  

단,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실수, 이해되는 실수여야겠지요~ 아자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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