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 매우 평화로운 동네였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매우 살기 좋은 동네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동네가 한바탕 뒤집어졌습니다. 귀엽디 귀여운 옆집 꼬마아이의 엉덩이물림 사고 때문입니다. 평화로운 동네에서 이게 무슨 일이냐며 사람들은 마주칠 때마다 서로 수군댔습니다. 이 꼬마는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사고를 당했을까요?
언제부턴가 마을 안에 큰 개 한 마리가 돌아다녔습니다. 마을에는 그만한 개들이 제법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요. 이놈 생긴 것도 허여 멀끔 허니 눈빛도 온순해서 다들 착한 개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눈이 뒤집어지더니 그 조그만 아이의 엉덩이를 그만 콱 물어버린 겁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날로 아이는 병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습니다. 워낙 체구가 작아 아이의 생식기까지 건드린 모양입니다.
온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였습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마을 이장한테 가서 상의를 해보자 했는데, 이장님과 이장님 이하 사람들은 매우 바빠 보입니다. 원래 살았던 멀쩡한 집을 두고 온갖 핑계를 대며 집을 옮겨야 한다고 하더니 아직도 집터는 어디가 좋을까 어느 나무를 베어야 좋은 집을 만들 수 있을까 궁리만 한 가득이라 우리의 이야기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립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집이 그렇게 중한가?? 잠시 갸우뚱해집니다. 이장의 오른팔에게 이 사태를 물어보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자신의 딸은 자가용으로 온 동네를 다니기 때문에 그 개랑 만날 확률이 많이 낮아서 아마도 관심이 없나 봅니다. 이장의 왼팔에게 어쩌면 좋겠느냐고 저 개를 잡아다가 목줄을 좀 해 달라고 했더니 그러지 말고 사고당한 아이네 집을 개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서 좀 멀리 이사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상한 소리를 해댑니다. 왼팔도 개를 맨손으로 후려 잡다가 혹시 물릴까 봐 무서운가 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끼리 회의를 거친 후 이 미친개의 면상을 공개하여 벽보에 붙이기로 했습니다. 아직 못 본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하니 주의 주고자 함입니다. 미친개의 면상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려 보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정상인 척할 때
본색을 드러낼 때
우선 생긴 건 멀쩡하니 잘 생겼습니다. 허연 털이고 몸집은 제법 큽니다. 귀는 살짝 넓적한 토끼 귀 같습니다.
잘 기억해 두고 이 놈이 나오면 아이들 단속 잘하라고 밑에 써두기도 했습니다. 한쪽에서는 개도 인권이 아니 견권이 있는데 얼굴 아니 면상 공개는 심하다고 하지만, 지금 현재로선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벽보를 붙인 지 며칠 후 개들끼리 소문이 돌았는지 미친개의 진상짓을 보고 자기도 한 번 날 뛰어봐? 하던 살짝 미칠락 말락 하려던 개가 주춤하는 모양새입니다. 자신의 면상은 공개되고 싶지 않은가 봅니다. 어쨌든 다행입니다. 얼른 이장님 집이 완성되고 오른팔 왼팔도 좀 한가해져서 미친개 목줄 좀 더 단단한 거 구해오라고 하고 혹시 화학 요법으로 다스릴 수는 없는지도 좀 알아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마을엔 열두 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은 아직도 병원에 누워 있지만 나머지 열한 명은 우리 손으로 반드시 저 미친개에게서 지켜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 마을의 어른들로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니까요.
유독 범죄자에게 관대한 우리나라의 성범죄자 신상공개 관련한 이야기를 픽션처럼, 그렇지만 어디서 한 번은 들어봄직한 이야기로 꾸며 보았습니다. 2022년 4월 경 썼던 것이고 그 당시 실화냐고 묻는 분이 계시던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본문에 나온 사진의 개도 당연히 멀쩡한 개입니다. 사진이 절묘했을 뿐. 아낌없이 열연을 한 개에게 깊은 감사와 함께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더 글로리" 에서처럼 자체적인 심판이 성공하여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것도 참 좋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세팅된 허구일 뿐입니다.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위 이야기도 여러 상황들에 밀려 마을 사람들의 자체적인 회의를 거쳐 신상공개를 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지만, 나라는 나라답게 법은 법답게 인간은 인간답게 모두 맡은 역할을 부끄럽지 않게 해내어 최소한 억울한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