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May 10. 2023

된장 골마지 너 때문에 내 속은 곪았지

된장에 하얀 꽃이 피었어요

싸웠습니다. 된장.


위 "된장"은 욕이 아닙니다.

된장 때문에 싸웠다는 주제를 살포시 미리 언급해 드린 겁니다.


나중에 늙어서 실버타운... 까진 아니더라도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알아서 잘 살려면 열심히 벌어야 하기에 저는 주로 컴퓨터를 만집니다. 더구나 행동이 굼뜨기 때문에 아침이나 낮이나 저녁이나 밤이나 뭐 그냥 대중없이 시도 때도 없이 앉아 있는 편입니다. 저와는 반대로 남편은 행동이 매우 재빠르기 때문에 제가 집안일을 1시간 붙들고 있어야 끝날 일을 한 20분 정도에 뚝딱 해치웁니다. 그럼 효율성을 따지기 위해서 저는 앉아서 돈을 벌고 남편은 가사를 하는 것이 확실히 이득이 됩니다. 우린 한 팀이니까요. 아! 물론 남편도 회사를 갑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큰 비상사태가 있지 않고서는 남편의 업무는 꽤나 널널하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저는 앉아 있어도 마음의 짐을 좀 덜 수가 있지요.



남편이 냉장고를 열어 이것저것 꺼내길래 저도 같이 냉장고를 들여다 보는데 안쪽 구석에 자리 잡은 동그란 된장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막둥이가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다녀온 "장 체험하기"에서 만들어 온 된장이었습니다. 작년이었는지, 재작년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데다 된장을 가져온 당시 뚜껑에는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았으니 곰팡이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걷어내고 드시면 괜찮습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던 게 기억나 뚜껑을 조심스레 열어보았습니다. 아...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얀 솜털 같은 곰팡이가 존재감을 위풍당당하게 내뿜고 있네요.



싱크대 앞에 서 있는 남편에게 건네줍니다.

"곰팡이 있어. 이거 걷어내고 먹던가 아님 버리던가 해야겠는데?"

하고 얘기를 꺼냈고 남편은 숟가락을 찾아 하나를 손에 쥡니다.

그리고 병 안쪽 벽에 붙어 있는 곰팡이를 스윽 끌어내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된장에 비벼버립니다. 으윽!!!

'음... 그냥 오래된 거니 버리려는 모양이구나.'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또 벽에 있는 곰팡이를 싸악 모아 된장에 펴 바릅니다. 그러더니 자꾸만 된장에 슥슥 비비고 평평하게 위를 고릅니다. 버릴 것을 왜 저리 공들여 다듬나 싶은데 앗! 도로 뚜껑을 덮으려는 겁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냉장고에 집어넣어.

응??? 이걸 왜? 버려야지! 이걸 먹어? 곰팡이로 비빈 걸??

아휴. 당신은 안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집어넣어.

응??? 누가 먹든, 그거 먹다가 병 걸리면???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냉장고에 도로 집어넣으라는 말에 저는 버럭 큰 소리가 나와버리고 말았습니다.


가끔씩 이렇게 서로 의견 충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말싸움을 못합니다. 워낙 목소리가 작기도 하고(식당에서 직원을 부를 때 한 번에 알아들은 직원을 본 적이 없고...), 논리력도 떨어지고(어렸을 적, 논리야 놀자 1권만 읽었더니 논리력이 떨어지는...), 실컷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맨 처음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까먹기도 하고(벌써 치매야, 뭐야...), 머리가 나쁜가 봅니다(순 노력형...). 그래서 틈날 때마다 메모를 하는 타입인데 와다다다 말싸움을 하다 말고 메모를 할 수도 없으니, 말문이 막히면 냅다 목소리만 커져버리는 최대 단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이기질 못하니 남편을 설득할 방법은 없고, 집에 어른은 남편과 나, 단 둘 뿐이니 누가 중재를 해 줄 수도 없습니다.


가끔은 집에 어른이 한 사람 더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각자 몇십 년을 자신이 살아온 가정에서 나름의 살아온 방식 때문에 충돌이 생길 때, 50대 50의 팽팽한 의견이 맞설 때는 누구 하나 지려고 하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아무리 내가 설명을 해줘도 씨알도 안 먹힌다 싶을 때는 "길 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한 번 물어봐."라는 말을 뱉고는 합니다. 그렇다고 진짜 길에 나가서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물어본 적은 없습니다만 정말 물어보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너무 뻔하고 당연해서 평소 생각조차 한 적이 없는 일로 의견이 대립할 때는 하아,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입니다.


지금 이 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이 먹히지 않아 소리를 지른 것인데 소리를 왜 지르냐고 시끄럽다고 오히려 뭐라고 하는 남편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지난번 달콤달달 작가님의 글 중에 가시를 제대로 바르지 않은 남편이 남겨 둔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릴 뻔했다고 하니 남편분께서 암살 실패했다고 위트 있는 대답을 했다는 글 (https://brunch.co.kr/@hyk0917/244)이 있었는데 우리 집 상황은 현재 위트는 쏙 빠지고 먹으면 죽을 것 같은 된장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울 판입니다.


그동안 돈 번다고 앉아서 일하는 동안 이번 된장 같은 일이 또 없었다고 누가 보장을 할까요.

역시 살림은 여자가 해야 하는 거였던가요.

아니면 여태껏 먹고 죽지 않았으니 그냥 비위만 좋으면 되는 거였나요.




보글보글 소리가 납니다(달갑지도 않습니다).

지난번 코스트코에서 사다 놓은 해물을 된장국에 넣어 해물 된장국을 끓이는 모양입니다.

슬며시 냉장고 문을 열어 아까 도로 넣었던 된장의 양이 혹시 줄었는지 아닌지 매의 눈으로 체크를 해 봅니다. 보아하니 실랑이를 벌였던 된장은 손도 대지 않고 다른 멀쩡한 된장으로만 된장국을 완성한 모양입니다. 다행히 내 얘기가 먹혔네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곰팡이를 치덕치덕 비빈 된장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이 선 모양입니다. 맨날, 오래 살아서 뭐 하냐고, 자긴 일찍 죽고 싶다더니 결국 당신도 오래 살고 싶은 거로구나.


아... 하마터면 곰팡이 비빈 된장이 된장국으로 들어갈 뻔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난리 치지 않았더라면...


된장국을...

이리 목숨 걸고 먹을 일인가... 이게...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2대 1이면 내 말을 쉽게 믿을 만도 한데 앞으로도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이 벌어질 경우엔 전 또 큰소리가 먼저 나올 판인데 이를 어쩌죠?


아, 한 번씩 미친 사람처럼 큰 소리를 치고 있는 내가 너무 싫습니다.

우렁각시 나오는 우렁이는 아니더라도 심판이 나오는 우렁이, 어디 없을까요?

의견이 다를 때 누가 옳은 지 손을 들어줄 심판이 시급합니다.


오래 살고 싶어요...

이런 된장...ㅠ.ㅠ






이번 기회에 좀 더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곰팡이 있는 된장을 먹어도 되는지 안되는지!

일반적으로 곰팡이는 피부 알레르기,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1급 발암 물질인 독소 '아플라톡신'을 유발하기도 한다. 단, 발효식품에 하얗게 생기는 곰팡이(골마지)는 인체에 무해한 효모라고 볼 수 있고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골마지 속에는 독성이 없다고 밝혀지기도 했다고. 발효 식품의 골마지는 "걷어내고 먹으면 된다."

고 하네요. - 출처.된장 곰팡이(골마지), 된장찌개 거품, 먹으면 안되나요? (tistory.com)


*photo by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이 어찌 한결같을 수 있겠느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