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Sep 23. 2023

화장실 청소를 남자가 해야 하는 이유

잔소리가 확 줄어듭니다

치약 짤 땐 꼬리부터 짜 올려야지, 왜 한 복판부터 짜는 거야!


로션을 썼으면 뚜껑을 잘 닫아놔야지, 왜 맨날 열어 놓는 건데!


물건을 썼으면 제발 좀 제 자리에 두라고!


등등 남녀가 한 지붕 아래 살게 되면 서로 이해 못 할 일들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서로에게 싫은 소리를 해대게 마련이다.


그중 여자 입장에서 가장 싫으면서 분노가 치미는 일은 단연 남자와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는 일일 것이다.



출처. freepik



용변을 보고 나왔음이 명백한, 매번 올라가 있는 변기뚜껑에, 그것도 모자라 사방으로 튄 노란 방울들...

볼일을 보러 급히 들어갔지만 으악! 소리를 지르고 다시 밖으로 튀어나오고 싶어 진다. 겨우 화를 억누르고 둘둘 말은 화장지로 그것들을 대충 슥슥 닦고는 올라가 있는 변기 뚜껑을 내리고 어쩔 수 없이 볼일을 보지만, 꼭 내 몸 어딘가에 그 방울들이 묻었을 것 같아 기분은 점진적으로 찝찝해진다.


이뿐인가.

그와 나 사이에 새로운 생명체가 빚어지고 탄생하여 드디어 화장실에 입성하는 그날이 오면 더욱 가관이다.


그나마 어른 남자는 조심성이라도 있지, 사고 치는 재미로 살고 사고가 주특기인 어린 남자아이는 조준이 잘 될 때보다 조준이 잘 안 되는 때가 더 많으므로 노란 그것은 더욱더 천지사방으로 방울방울 튀어나간다. 으악!!!



그래서 나는 화장실 청소를 미뤘다.

화장실 앞에서 화장실을 못 본 척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냄새에 민감한 개코 남편이 참다 참다 참지 못하고 드디어 화장실 청소를 하는 날이 왔다. 낑낑거리며 스스로 청소를 하고 나오더니 깨달은 바가 많은 모양이었다.


청소를 했는지 말았는지 반나절도 못 지나 화장실의 노란 방울들은 이곳저곳에 출현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깨끗함이 오래갔다. 정조준의 명수가 된 것인가. 의아했지만 자기 혹시 전생에 궁수였느냐고 물을 순 없어 그냥 넘어갔다. 다음 날이면 청소했던 게 무색하게 금세 더러워지겠지 했는데, 어! 그다음 날도 화장실은 깨끗했다. 뭘까? 왜 이래?



어느 날 급하게 요의가 찾아와 노크 따위 건너뛰고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말았는데 변기에 앉아있는 남편을 보았다. 이보쇼. 문을 잠그고 일을 보셔야지...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중...

나의 응가 냄새도 맡기 싫은데 남의 응가 냄새를 맡으며 볼일 보는 건 더 싫은 마음에 얼마나 더 참아야 하나 시간을 가늠해 보려 얼른 질문했다.


"여보! 응가해?"

된 소리로 시작하는 한 글자의 정확한 단어가 있지만, 그것만은 귀여운 단어인 응가로 대체해서 말을 하는 편이다.

당연히 "응"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다.


응? 응가가 아니라고?

근데 변기에 앉아 있다고??


그렇다. 남편은 남자로서의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화장실 청소를 스스로 한 이후 완전히 변한 남편.

깨달은 것이다. 처음부터 어지르지 않으면 치울 게 별로 없는 방청소와 똑같이 화장실도 처음부터 어지르지 않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래서

크게 볼일이 아니고, 작게 볼일이어도 서지 않고 앉아서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제 잔소리를 할 일이 없어졌다.

쾌적한 화장실이다. 신이 났다.



아들이 기저귀를 막 떼고 변 교육할 때 유아 변기를 두고 가르쳤었는데, 몸이 점점 커져서 어른 변기에 직접 쌀 수 있는 그날이 되었다.

아들은 자연스럽게 변기 뚜껑을 올리고 발사하려고 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아이 아빠가 아들에게 다급히 하는 말.


아들! 서서 하면 어떡해! 앉아, 앉아. 앉아서 싸.


아들의 벙찐 표정. 여태껏 서서 쉬하는 걸 알려주셔 놓고는 왜 실전에 와서는 다른 소리십니까 하는 마음의 소리가 표정에 고스란히 보였다.


만일 엄마가 말했다면

엄마는 그게 없으니까 그런 말 하지, 남자는 원래 이렇게 서서 하는 거라구우


하고 딴에 남자라고 거들먹거리며 이야기했을 아이인데 자신과 똑같은 체를 가진 어른 남자가 하는 말이니 달리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아들이다.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네에..."

다음번 화장실 갈 때 유심히 지켜보니 작은 볼일이든 큰 볼일이든 무조건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는다. ㅋ



아들아.

밖에 나가서 작은 볼일 볼 때도 앉아서 하는 건 아니지?

화장실 갈 때마다 앉으면 친구들이 너 하루에 응가를 매우 여러 번 하는 줄 오해하니까 밖에서 쉬야 할 땐 친구들처럼 서서 하렴. ^^



잔소리 없는 화목한 우리 집. 출처. 셔터스톡


매거진의 이전글 징크스 때문에 글을 못 쓰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