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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an 15. 2024

집의 소중함은 1,600원이면 됩니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을 초등학생의 눈으로 바라보기

"쓰레기를 먹는 가족" 글을 쓴 후 나는 바로 발행 버튼을 누르는 게 주저됐다. 독자들이 너무 황당하다고 느끼진 않을까, 흔히 나오는 밀웜이 등장하니 식상하다고 여기지는 않을까 여러 생각이 들어 작가의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엄마 생신 때 만난 친언니에게 미발행 글인데 어떤지 읽어봐 달라고 글을 먼저 보여주게 되었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언니의 표정은 나의 예상보다 더 다이내믹했다. 놀라움에 눈은 똥그래지고 헉 하는 소리까지.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옆에서 글을 같이 따라 읽으며 글 한 번, 언니 얼굴 한 번, 번갈아 쳐다보던 나는 글보다 언니 얼굴의 표정 변화가 더 재미있었다.) 길지 않은 글이라 금방 다 읽은 언니는 마지막에 첨부한 한 문장을 보고는 "어우야~ 깜짝 놀랐잖아. 진짠 줄 알았네."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그 영화 생각나. 혹시 <고속도로 가족>이라고 봤어? 정일우 나오는 거." 하고 알려주었다. 시트콤에서 자주 보아왔던 정일우는 주로 멀끔한 역을 맡았던 것 같은데, 고속도로 가족이라면 집 없이 캠핑카를 빌려서 회사도 학교도 다니지 않고 여행을 삶처럼, 삶을 여행처럼 살아가는 가족을 말하는 건가 싶었다. 대략적인 내용을 알려주는 언니의 말을 잘라먹고 "그러니까 캠핑카로 다닌다는 거지?" 하고 확인차 묻는데 "아니야. 그냥 거지인 거야. 거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며 가며 스쳐 지나기만 했지 거지의 삶을 뚫어져라 목격한 적은 없다. "나 혼자 산다"나 "전지적 참견 시점" 같은 프로그램에서 일반인들보다 훨씬 잘 살아가는 유명인들의 삶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지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호기심이 생겼다. 어떻게 사는 걸까. 다른 이들이 추천하는 영화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편인데 언니가 얘기해 준 이 영화는 매우 처참한 환경에 빠진 사람들 이야기라 호기심이 생겼다. 관음증 환자가 아주 잠깐 이해되기도 했다. (뭐래는 거니.) 쿠팡 와우 회원이면 쿠팡에서 제공하는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으니 들어가서 냉큼 보려 했으나 개별구매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일주일 동안 볼 수 있고 1,600원이란다. 갈등 생긴다. 일전에 산 만년필도 1천 원 밖에 안 하는데 무려 육백 원이 더 붙는다니. 만 원이 훌쩍 넘는 영화관에서의 관람은 잘도 보면서 이런 돈은 또 왜 이리 아까운지 대충 줄거리도 이미 들어서 아니까 보지 말까 하는데 의지와는 반대로 내 손가락은 이미 구매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리고 재생되는 영화.


앞부분을 조금만 보았을 뿐인데 아... 하고 탄식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빠, 엄마, 딸, 아들 네 가족이 휴게소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2만 원만 빌려 줄 수 있냐고 묻고 받은 돈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내는 이야기였다. 아! 엄마 뱃속에 아이도 있었으니 곧 다섯 식구가 되는구나.



빌려 준다는 건 갚음을 전제로 하는데 정일우는 휴게소 방문객에게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매번 "그냥" 돈을 달라고 하지 않고 "빌려" 달라면서 끝내 계좌까지 받아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자존심이라기보단 돈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받아내기 위한 전략으로 보이기도 보인다. 물론 다시 갚지는 않는다. 한 번 만난 고속도로 방문객과 다시 또 만날 확률은 오만팔천분의 일쯤 될 테니까. 그렇게 2만 원 받아내기에 성공하면 종일 굶었던 네 식구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인당 하나씩 돌아가는 컵라면은 감지덕지다. 그마저도 여유가 없을 때는 휴게소 식당에서 한 사람분의 음식을 겨우 시키고 넷이서 나눠 먹는다.





텐트를 집 삼아 지내다가 텐트 철거하라는 공무원의 강요를 받으면 그땐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이 휴게소에서 제일 가까운 다른 휴게소로.


영화를 보면서 내내 이런 생각이 든다.


불행한 사람은 계속 참담한 내일을 걷게 되고, 

긍정적인 사람은 그나마 밝은 빛을 따라가려 애쓰며,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갈망하는 사람은 꾸준히 얻음을 향하여 걸음으로써,

그렇게 인간의 생은 바뀐다.

그렇기에 포기하면

안 된 다.



내 몸 뉘일 곳이 있다는 것, 내 몸이 고단하여 잠들 때 찬 바람이 들이치지 않도록 닫을 수 있는 창문과 눈비를 막을 수 있는 천장이 있다는 것, 팔다리 쭉 펴고 누워 하늘을 향했을 때 달과 별 대신 포근한 집을 덮어주는 천장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렇게 고마운 것인지 그동안 고마움을 너무 모르고 지냈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한 생각이 절로 든다. (얘들아 이리 온. 안락한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늘 가족을 위해 일하는 아빠한테 큰 절 한 번 올려 보자. ^^)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함이 밀려오는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초등 고학년의 자녀라면 같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고구마 100개에 숨이 턱 막히는 순간순간이 있지만 평소 잘 느끼지 못했던 101가지를 깨닫게 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거울치료와도 같은 느낌(왜 주차장에서 놀면 위험한지, 가게에서 갖고 싶은 물건을 보고 무작정 떼를 쓰는 게 얼마나 비매너(꼴불견이라 쓰고 싶다)인지 스스로 깨달을 수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보고 났더니 부모님께 효도까지는 아니어도 효도 비슷한 걸 하려고 하는 모습을 며칠간 볼 수 있었다. (장기간은 바라지도 않는다. 며칠이라도 아주 큰 수확이다.)


가장의 올바른 사고방식(정일우의 주변인물들이 그를 그렇게 살도록 만드는데 큰 영향을 주었지만)이 얼마나 가족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영화,

1,600원으로 집의 소중함을 절절히 일깨워준 영화,

<고속도로 가족>이었습니다.(영화 소개하던 프로그램의 성우의 멘트를 한 번 따라 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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