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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Jan 10. 2024

야야, 내 부엌은 내가 할게

따뜻한 가시방석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정신 못 차릴 만큼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한 달을 보내고 두 달쯤 되었을 무렵, 혼자 계시는 어머님을 뵈러 시댁에 갔을 때였다. 시댁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중압감만으로도 나는 괜히 안절부절못했다. 며느리라면 모름지기 시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안 되며 시댁 부엌과 며느리는 한 몸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부엌을 탈출하는 건 힘든 일이라고 여기저기서 들었던 탓이었다. 며느리로서 투쟁하기보다는 순응하기로 한 나에게 제일 만만한 건 설거지였다.


늘 함께 지내던 아들이 결혼을 했으니 한동안 혼자 계셨던 어머님은 반가운 아들 내외 왔다고 맛난 반찬을 골고루 준비해 놓으셨다. 아무도 없이 혼자 하시느라 힘에 부치셨는지 얼굴이 그새 핼쑥해지셨다. 가뜩이나 40킬로 갓 넘는 호리호리하신 체구의 어머니는 그새 더 쪼그라드신 듯 보였다. 나는 밥을 얼른 먹고 냉큼 일어나 주방에 갔다. 맛있게 먹은 만큼 설거지도 깨끗이 해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고무장갑이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아무리 찾아도 내 살림살이와 다른 주방 구조는 어색하고 낯설기만 해 한눈에 뭘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조심스레 여쭤볼 수밖에.


"어머니~ 장갑 어디 있어요?"


"설거지하게? 아유 놔둬라. 내가 할 거다. 이리 와."


"어...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아직 식사 중이신 어머님 몰래 물을 살살 틀고 조심조심 설거지를 하는데 언제 오셨는지 하지 말라며 물을 잠그고 내 몸을 밀어내셨다. 밀리고 싶지 않았지만 강경한 어머님의 목소리에는 내가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며느리인 나는 차라리 설거지하는 게 마음이 편했을 텐데 어머님의 말씀을 더 거스르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방으로 도로 들어와 앉았다. 움직이지 않으니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내내 가시방석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지만 전혀 편하지 않아 하는 나를 보시곤 어머님이 빙긋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내 부엌이니까 내가 할게. 너네 집 부엌에서는 네가 해. 원래 남의 집 부엌은 불편한 법이거든."


"아... 그래두... 이러시면 제가 너무 죄송한데..."


그 이후로도 어머님은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내가 거의 처음 듣다시피 하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힘들 땐서로 도와주며 사는 거지 꼭 내가 할 일, 네가 할 일 나눌 필요가 없다시며 당신 아들이지만 집안일에 물러나 있지 말라고 아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주 말씀하시곤 했다.


매우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어머님이셨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은 의외로 참 많다. 지식은 배울 수 있어도 지혜는 얻을 수 없으니 지혜로운 삶의 방식은 주변의 생활방식을 보고 듣고 배워야 한다. 어머님의 행동 하나하나는 내게 귀감이 되었고, 그 당시 갓 결혼하여 어린아이를 낳고 키우는 내가 당신 자리에 앉게 되면 보고 배운 그대로 하게 될 확률이 높다.


내 집이 아니면 무엇 하나 편한 게 없다. 그토록 가고 싶은 여행도 막상 떠나고 나면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은 집이었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끼니 말이다. 그러니 부엌이야 말해 뭐 할까. 안주인의 입맛대로 손맛대로 살림살이가 제각각 자리 잡은 곳이니 남이 들어가 일한다면 실제 일하는 시간보다 물건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더 길어져 일하기가 녹록지 않다.


그렇게 10년쯤까지 시댁이란 공간에서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밥 먹을 때 수저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것 빼고는. 부잣집이라서 가사를 도와주는 이모님이 따로 계셔서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평범한 살림살이라 오로지 어머님께서 모든 일을 다 하셨는데도 그랬다. 다른 집들은 며느리가 앉을 새도 없이 일하느라 명절이면 힘들어 죽겠다고 이혼 소리가 돌림노래처럼 들려오던데 나에겐 주도적으로 일해야 하는 친정보다 시댁이 훨씬 편했다. (편하다는 단어가 이렇게 약하게 다가오다니 편한 게 아니라 천국이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밥이 나오고, 과일이 나왔다. 가만히 앉아서 그저 노닥거리는 게 일이었다.


이제 내 아들은 고작 열한 살이지만, 십 년이 흐르고 또 십 년쯤 흘러 결혼을 하게 되면(지금은 결혼을 안 하고 엄마, 아빠랑 같이 살 거라 우기지만 만일 하게 된다면) 나도 며느리에게 폼나게 말해 보고 싶다.


"여기 부엌은 내 구역이니까 너는 앉아서 좀 쉬렴.

 너희 집, 네 부엌에서는 네가 하고."


미래의 우리 며느리는 어떻게 생겼는지 지금 알 수는 없지만 며늘아가의 행복한 표정은 왠지 벌써 보이는 것 같다. :)


이미지 출처. freepik



*대문 이미지 출처. 블로그 새가 앉은 자리

**이제는 시댁의 부엌도 좀 익숙해졌고, 어머님께서도 며느리가 많이 편해지셨는지 가만히 앉아있지만은 않아요. 곧잘 돕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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