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쓰레기를 몰래 버리다 걸렸다
선행을 강요하지 마세요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때는 스마트하게 카드만 대면 된다. 그럼 뚜껑이 자동으로 열리는데 쓰레기를 버리기만 하면 무게가 알아서 합산되어 매달 아파트관리비에 오물비용이 함께 청구된다. 배출 무게에 따라 비용을 납부하고 또 쓰레기를 적게 버리도록 간접적인 유도까지 하니 참 합리적이며 편리한 시스템이다.
음식물쓰레기는 처리를 거쳐 사료나 비료로 재사용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게 지구환경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 노력은 한다만 아예 0으로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조금씩 조금씩 모인 것이 어느덧 음식물 쓰레기 전용 통 하나를 가득 채웠기에 저녁을 다 먹고 통을 들고 버리러 나갔다.
그날은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바나나 껍질이 양이 꽤 나와서 바나나 껍질만 따로 담은 비닐봉지를 같이 들고나갔다. 카드를 대니 "삑"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고 바나나 껍질을 먼저 버렸다. 오염된 비닐봉지는 재활용이 안 되므로 바나나를 담아왔던 봉투를 바로 뒤에 있는 봉투 전용 쓰레기통에 버리려 몸을 뒤로 돌았는데 누군가 그새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카드를 찍어야 오물 통의 뚜껑이 열릴 텐데 카드 찍는 소리가 안 들렸던 것이다. 어디다 버리길래 뚜껑 열리는 소리도 없이 버리는 소리만 들리는 거지?
좀 의아했다. 비닐봉지를 처리하고 통에 담긴 쓰레기를 마저 버리려고 뒤를 돌아서는데 이럴 수가... 내가 버리고 있던, 그러니까 내가 카드를 찍어 열어 놓았던 쓰레기통에 한 여성이 몰래 자신의 쓰레기를 버리는 마지막 동작을 취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조금 더 천천히 뒤를 돌았다면 완전범죄(?)였을 텐데 나와 눈이 마주친 걸 살짝 놀라면서 자신의 행동이 들킨 걸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열어둔 쓰레기통에 냉큼 말도 없이 몰래 자신의 쓰레기를 부어 버리다니.
기분이 참 묘했다. 오물 비용이야 매우 저렴해서 까짓 거 내가 대신 내 줄수도 있는 문제지만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들키지 않고 몰래 행동하려 했던 그 사람의 행동이 얌체 같아 그냥 넘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이야기를 해야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가 열어둔 쓰레기통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신 거예요? 그러시면 안 되죠~"
말이 끝나자마자 그 여성은 바로 옆에서 재활용을 정리하시던 경비아저씨께 냉큼 다가가 팔짱을 끼며 억울하다는 듯 고자질을 했다.
"어머나~~~ 애기 엄마가 나 저기다 쓰레기 버렸다고 뭐라 한다? 호호호~"
엥??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연배가 있으신 경비아저씨와 평소 친분이 있었던지 그 중년 여성은 내가 자신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한마디 했다고 나를 일러바쳐 졸지에 나는 나이 많은 어른에게 한 소리 하는 위아래도 없는 나쁜 여자가 되고 말았다.
뭐 이런 뭣 같은 상황이 다 있나.
그 사람이 버린 오물이 산타클로스 선물 짐꾸러기처럼 엄청나게 많은 양이어서 내가 비용을 많이 지불하게 될까 봐 기분이 상한 게 아니다. 적어도 자신이 남의 영역에 들어가 무언가 하기를 바란다면 몰래 냉큼 해버리고 모른 척할 일이 아니라 사전에 먼저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게 순서 아닌가.
나 몰래 냉큼 버리지 않고
"음식물쓰레기 카드를 깜빡 잊고 안 가지고 나와서 그러는데 미안하지만 이것 좀 같이 버려도 될까요?" 하고 물었다면, 흔쾌히 그러시라고 괜찮다고 했을 텐데 남의 강요에 의한 선행은 상쾌하지도 않을뿐더러 당해보니 기분은 더욱 찝찝하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그 중년의 여성은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때로 내 생각을 떠올리며 '새파랗게 어린 애기 엄마가 감히 나이 많은 나에게 뭐라고 한 소리를 해?'라고 고까워하고 있으려나.
상식에서 벗어난 자신의 행동을 은근슬쩍 정당화시키려는 생각은 좀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양해를 미리 구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걸리는 게 더 창피하지.
*이미지 출처. 블로그. 스머프할배의 만화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