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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Mar 30. 2024

할머니 뼈해장국에 깜짝 놀라는 외국인

그럼 마약김밥은?

외국인이 한국에 방문해 관광하며 깜짝 놀란 메뉴 중 하나는 "할머니 뼈해장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말 그대로 풀어서 써 보자면 할머니 뼈를 고아 만든 해장국이라는 의미가 된다. "할머니 산채 비빔밥"은 또 어떤가. 상상만으로도 경악할 노릇이다.


갈비찜, 돼지국밥, 닭발, 양꼬치, 오리주물럭 등 요리이름이란 모름지기 메뉴에 들어가는 육고기를 같이 언급해 주는 게 일반적이므로 외국인들 소스라치게 놀라며 오해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바도 아니다.


"할머니가 만든 뼈해장국"이라는 메뉴이름은 너무 길으니 입에 붙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작명이었다고 하기엔 우리 편하자고 처음 접해 기겁하는 외국인들은 무슨 죄인가 싶다. 엄마손파이도 마찬가지다. 파이에 엄마손이 들어갔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이것과 접근방식은 좀 다르지만 길거리에 흔히 보이는 마약김밥도 사실 좀 탐탁지 않은 메뉴명이다. 김밥을 먹으면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손을 놓을 수 없고 계속 흡입하게 될 거라는 판매전략을 담은 네이밍이라는 걸 익히 알면서도 "마약"이 들어간 이름이 영 보기가 거슬렸다.



이미지 출처. 블로그. 제니’s 따뜻한 식탁



더구나 유치원생이나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소풍이나 체험학습을 갈 때 집에서 도시락을 싸주기 여의치 않을 때는 마약김밥으로 대체하기도 하니 문제였다. 겨자소스에 살짝 찍어 한입에 넣을 수 있게 하려고 조그맣게 만들었으니 안에 들어가는 재료도 조그맣고 단출하다. 단무지, 계란, 당근만 들어가니 매우 귀엽고 아담한 사이즈여서 어린이의 조그마한 입에 넣기에도 부담 없고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이 음식을 앞에 두고 하는 아이와 엄마의 대화를 들어보면 가관이다.


"엄마 이 김밥은 이름이 뭐야?"

"응~ 이 김밥은 마약김밥이야. 어서 먹어~"


엥??

자녀에게 권하는 마약김밥이라니. "할머니뼈해장국"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일 아닌가.


자고로 자꾸 부르고 보고 들으면 염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법이다.

아주 옛날 한 옛날에 아이 이름을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라고 지은 것도 그 누구보다 오래오래 살라는 기원을 담아 지어준 것처럼.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마약김밥을 판매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손님의 뇌리에 강렬히 남을 수 있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기에 다소 충격적인 이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마음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너도 마약(김밥), 나도 마약(김밥), 에브리바디 마약(김밥)을 외치다 보면 입에 익고, 눈에 익어 숙한 마음에 진짜 마약도 한 번 먹어보고 싶고, 진짜 뿅 가나 안 가나 느껴보고 싶어지고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니 문제다.  


물론 해외 몇몇의 국가에서는 마약을 합법화한 나라도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키다리 아저씨로 남을 배우 이선균이 터무니없는 조사를 여러 차례 받는 것을 보고 마약 까짓 거 뭐 대단한 거라고 저 훌륭한 배우를 사지로 몰아넣느냐 한국을 싸잡아 욕하던 외국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약을 담배와 같은 기호식품으로 취급하는 게 맞다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된다고 말하지만 서양의 어느 도시에서 마약에 찌든 사람들이 좀비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니 개인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한국에 오면 한국법을 따라야 한다. 총기 소지가 불법인 한국에서 총기를 가지고 다니다 적발되면 범법자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23년 1월에 JTBC에서 방송된 뉴스에서 1월이 채 가기도 전 미국은 2800명이 총기 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는 정말 충격적이다.)

이럴진대 마약의 끝판왕급인 헤로인이든 담배보다 금단 현상이 덜하다고 여겨지는 대마초든 한국에서 마약이라 정의한 모든 마약은 불법이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규제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한데 길을 걷다 보면 이리도 심각한 단어인 "마약(김밥)"이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오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쉽게 접할 수 없다는 희귀함에 대한 호기심, 호기심에 대한 갈망이려나?


이런 연유로 기존에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마약통닭으로 자주 썼던 메뉴명에 마약이란 단어를 너무 쉽게 가져다 쓰는 게 아닐까 하는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다행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먼저 목소리를 내었고 법제화까지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24년 7월부터 마약김밥과 같이 메뉴명에 마약이라는 단어는 쓸 수 없다는 법조항이 시행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출처. 배민외식업광장 - 매일 만나는, 외식업의 모든 것! (baemin.com)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 중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뜨악할 단어들은 비단 이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이미 우리 생활에 깊이 파고든 상태이고 너무 익숙함에 젖어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그런 단어들을 발견한다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 자꾸만 수면 위로 띄우고 공론화시켜 좋은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아래 사진은 미국 오하이오주 이스트 리버풀 시당국이 마약 중독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두 장이다. (다소 공포, 혐오스러울 수 있으니 주의!)



아이가 보는 앞에서 마약을 투약하고 실신한 부부 이미지 출처. https://theqoo.net/square/635664926



그나저나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마약통닭이란 메뉴명 대신 뭐라고 대체해서 불러야 할지 사장님들 골치가 많이 아프실 것 같다. 중독성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마약'이라는 임팩트 있는 단어를 대체할 단어가 과연 있을까?


"마약김밥을 대체할만한 다른 이름은 뭐가 있을까?" 하고 챗GPT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나온 이름은


*김밥의 대명사

*최고의 김밥

*김밥의 찬란한 별

*김밥의 황금

*김밥의 맛있는 보석

*김밥의 맛있는 신세계


등을 알려주었다.

무엇 하나 눈에 확 들어오는 이름이 없긴 하다. 황금, 보석은 왠지 모르게 김밥이 딱딱해 이가 부러질 것 같고 그나마 별이 좀 나은 것 같은데 "별을 담은 김밥"이라는 뜻으로 "별밥"이라 해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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